글 못 쓰는 얼간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장
미션 #2
제목 : 글 못 쓰는 얼간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장 - 너는 너 자신 말고 다른 모두를 질투하지.
너는 파괴의 신이야. 너보다 잘난 모든 것들은 마땅히 몰락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네가 성공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의 실패와 몰락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거야. 말하자면 너는 보이지도 않은 대상을 모두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해 놓고 그들이 너보다 못나기 저주하는 거야. 그렇지 않다고? 너는 대체로 연민을 갖고 다른 사람을 응원한다고? 아마 적어도 겉으로는 그럴지 몰라. 그런데 네 검은 속, 네 추악한 내면엔 다른 무의식의 덩어리가 상주하고 있을걸? 분명 그럴 거야.
너는 늘 너 자신을 만나지. 글을 쓰는 너와, 글을 쓰지 못하는 또 다른 너. 너는 그 둘을 매일 만나. 너는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려고 해. 그저 잘나 보이고 싶었을까? 유행이라니까 따라 해 본 걸까? 남들이 한다니까 너도 모르게 나서본 걸까? 어쨌든 너는 동기가 존재했기 때문에? 혹은 너 자신과의 밀당에 성공해서? 그것에 이끌려서 책상 앞으로 이동해서 의자를 고쳐 앉았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펴고 결심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그리고 낮은 자존심을 극복하곤 글을 쓰기 시작해. 시야 바로 왼쪽? 오른쪽? 아니 뒤쪽엔 숱한 경쟁자들이 기다리고 있어. 아니 너보다 앞서가고 있어. 너보다 글을 훨씬 잘 쓴다고 말하자면 숙원하던 대업을 이미 이룬, 네가 오래전부터 질투하는 인간들이지. 물론 글을 잘 쓴다는 의미는 사람마다 달라서 잘 쓴다는 기준이 무엇을 객관적으로 뜻하는지는 나는 굳이 표현하지 않겠어. 나는 너의 기호를 모르니까. 앞으로 알고 싶지도 않고.
너는 머리를 쥐어 짜내. 젖 먹던 힘까지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순간에 네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글쓰기에 몰아넣지. 그래서 너는 멋진 작품을 만들었어. 극심한 스트레스와 수십 만개의 뉴런이 사망하는 불상사를 견뎌내고, 긴긴밤을 견딘 끝에 너는 너 자신을 극복한 끝에 뭔가를 잉태한 거야. 너는 그것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어.
그렇지만 너는 그 작품을 내놓지 않아.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 거지.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 버리는 거야. 한숨을 푹 쉬고 책상 밑 오래된 서랍을 열고 먼지만 가득한 종이 뭉치 더미 위, 말하자면 가능성이라는 폐지 더미에 그것을 하나 더 얹어놓는 거야. 그렇게 될 때 네가 얻는 장점이 있어. 너는 그 어떠한 평가든 받아도 되지 않으니까. 비판이든 냉철한 의견이든 악성 댓글이든 세상의 모든 무관심이든 그 무엇에서도 너는 자유로워질 거야. 그런데 말이야, 네가 진짜로 작품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데 있어. 그건 바로 너만 남들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 너는 늘 남들의 뒤꽁무니만 좇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 거야.
너는 이렇게 생각하지. 나는 독서량도 남들에 비해 부족하고, 인상적인 문장도 쓸 재주가 없고, 임팩트도 부족하고, 갈등도 없고, 주제의식도 없고, 논리적인 타당성도 없고, 명료하지도 않으며 감성적인 언어도 구사하지 못하며, 두서없이 쓰기만 하며, 정보조차 담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 게다가 꾸준하지도 못하다는 결과를 인정한 거지. 너는 네 문장이 남들과 비교해서 너무나 부족하다고 그냥 바람처럼 날아가는, 따분한 봄날의 오후 햇살 같다는 결론을 내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부족하다는 사실은 불변하는 거야.
너는 그 순간에 결정을 해야 해. 너의 소중한 자아, 그리고 네가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는 벼랑 끝에서 누구를 저 아래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시켜야 할 것이냐는 문제야. 너 스스로를 파괴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서 너는 다른 사람을 대신 밀어 뜨려.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뜨리는 선택을 하는 거야. 뭐 그렇게까지 비약할 일이 있냐고 너는 물을 지도 몰라. 그런데 네가 한 편의 글을 쓰면서 그 글을 스스로 평가하고 세상에 내놓기까지 이런 난관을 늘 겪게 되어 있어. 그건 글을 쓰는 사람의 숙명이거든. 그런데 너는 질투 성애자니까. 질투쟁이니까, 나 빼놓고 남들이 잘 되는 꼴을 볼 수는 없으니까, 너 자신을 보호하고 다른 사람을 파괴하는 선택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거야. 너 말고 모든 사람들은 너의 경쟁자고 되고, 잠재적인 적이 되고, 타도해야 할 대상이 되는 거야. 그런데 그들을 파괴했다고 믿었지만 정작 너는 너 스스로를 파괴해버리고 만 거야.
그래서 내가 첫 문장에서 너는 파괴의 신이라고 하는 거야. 너는 너를 철저하게 방어해야 하니까, 다른 사람을 희생자로 삼아 파괴하는 거지. 네가 희생자가 되어서는 곤란하잖아. 그래, 너는 그저 피해자일 뿐인 거야. 하지만 너는 피해자가 아니라 단순히 약자일 뿐이야. 약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강자에게 앙심을 품지. 그 앙심은 질투, 분노, 시기심, 중오 이런 감정들이야.
피해자에게는 늘 가해자가 필요하지. 글을 잘 쓰는 인간, 그러니까 너와 비슷한 부류일 거라 짐작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출간한 인간, 같이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는데 더 많은 칭찬을 받는 인간, 글을 쓰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인간, 나보다 표현력이 뛰어난 인간, 나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인간, 매일매일 꾸준하게 글을 쓰는 인간, 세상엔 너보다 잘나고 뛰어난 인간이 도처에 깔려 있지. 너 밑에 있을 거라 믿었던 건 착각이고 사실 네가 남들 바닥에 깔려 있다는 사실.
너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거야. 너와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 너보다 잘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너의 파괴의 신이 작동하는 거야. 너 빼놓고 모두를 파괴하는 거지. 페소아는 삶은 어차피 착취당하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고 했어. 우리는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누군가에게 착취를 당하는 거야. 페소아는 차라리 그의 사장에게 착취당하는 편이 낫다고 말해. 허영심이나 경멸, 질투에게 착취당하는 것보다는 덜 비참하다고 말이야. 너는 이 말을 이해해? 질투에게 착취당하는 느낌을 이해하냐고. 질투에게 착취당해서 아니 완벽하게 잠식당해서 나를 빼놓고 모두를 파괴의 대상으로 삼는 것. 그래, 암살자가 되고 싶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질투하는 대상은 자신과 같거나 같을 거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라고 했어. 그 같은 사람들이란 가족, 친척, 직장, 나이, 모임, 재산, 인격 등의 척도로 간주돼. 네가 시기심을 품고 질투를 하는 이유는 그들과 네가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들이 네가 진정으로 꿈꿔왔던 세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인 거야. 너는 바라기만 하고 절대 시도해 보지 않은 일들을 그들은 이미 성취해 내고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너는 그들과 달라.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고, 다만 그 길이 비슷해 보이는 것일 뿐이야. 네가 세상을 보는 렌즈엔 탁한 먼지만 잔뜩 끼어 있어. 그걸 걷어내라고.
다른 사람과 너를 비교하려고 하지 마. 너에겐 너의 길이 있고 너만의 출발점, 너만의 방향이 있는 거야. 사람이 모두 다르게 생겼고 다른 삶에서 다른 모양으로 역경과 고난을 거쳐 여기까지 왔듯이 너는 너만의 노력과 사유를 통해서 너의 길로 들어서면 되는 거야. 너 자신과의 승부에서 지지 않는 게 중요해. 그러니 너의 무의식의 세계, 깊이 감춰두고 꾹꾹 눌러둔 절망과 분노의 앙심을 역으로 이용해 봐. 그 모든 건 너에게 달렸다고. 뭐 그래도 질투쟁이로 살고 싶다고 한다면 굳이 말릴 이유는 없지만… 다만 영원히 비교만 하면서 스스로를 탓하다가는 아무런 글조차 너는 쓰지 못할 거야. 영원한 미지수의 서랍만 존재하게 될 거라고. 그렇게 되면 세상에 스크래치 자국조차 남기지 못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