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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용병

초단편 소설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골목 저 끝에서부터 ‘스테인리스 304’ 긁는 소리 같은, 예를 들어 끅끅깎깍, 뽀도독, 끄그극 예의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오면 어김없이 그 노인이 곧장 이곳으로 입장한다는 얘기였다. 노인은 늘 자신의 등장을 진군나팔소리가 아닌 그가 사랑하는 '스테인리스 304' 냄비를 오른쪽 허리에 차고 안쪽을 수세미로 쓱싹쓱싹 문질러대며 자신의 깔끔한 출현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 노인은 고급 기술자였다, 국내에 단 하나만 남은, 국보급 기술 보유자라 할 수 있었다! 그는… 흐음… 악플 깎는 노인네, 아니 악플 계의 무형문화재였다. 물론 그 사실은 노인의 주장일 따름이지만…


노인은 오랫동안 전문가로 살아왔는데, 그러니까 우리 민족이야말로 감정을 다루는 글쓰기 분야만큼은 그리스 못지않다고 크게 자부심을 가진 코리안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제 무대에서 퇴역한 골방 늙은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젠 자음 하나 타이핑하기에도 지나치게 숨 가쁜 쇳소리를 몹쓸 기관지를 통해서 몰아쉬어야 했기 때문에.


노인은 재능을 갖고 있었다. 천부적인 그 노인만의 빛나는 재능, 노인의 부모님과 또 부모님의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는 악플 한 건당 오천 원을 받는 악플계의 레전드였다. 대부분이 이 업장에서 오백 원, 혹은 오십 원까지 단가가 내려갔는데 - 워낙 경쟁자가 많아서, 역시 코리안은 악플도 세계 최고가 아닌가 - , 모두가 푸대접을 받는 마당에 그는 남들의 10배를 받았으니까.


그는 직업적으로 의뢰인에게 늘 고용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노인은 집안에 콕 쑤셔 박혀서 키보드 따위로 격조 없는 욕설을 생산해 대는, 취미로 남들에게 시비나 걸어대는, 마치 자신이 소년원 판사라도 된 듯이 불특정 다수에게 훈계를 일삼으려고 하는, 그런 아마추어급 드잡이들과는 급이 달랐다. 노인은 아군, 적군 피아식별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쪽에서든 그는 마치 네팔의 구르카 용병이라도 된 듯이 한 번 출몰하기만 하면 적 진지를 완전히 쓸어버렸으니까.


노인은 그가 노인이 아닌 시절부터 시장을 주름잡은 신적인 존재로 군림했다. 그는 아주 짧은 글, 그러니까 촌철살인 급 '세 줄 글쓰기'로 정말로 상대방을 거의 죽일 뻔할 정도의 킬링 테크놀로지를 가졌다. 타인의 감정을 긁는 것이라면 그 누구도 그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그는 우리 민족, 민족의 기수, 글쓰기의 마지막 사수인 셈이었다. 그는 단 한 줄 혹은 세 줄로 타인의 심금을 건드렸다. 다만 그가 건드리는 건 주로 울분, 분노, 증오, 혐오라는 게 전부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는 그만의 철학을 가졌는데, 그것은 짧은 글로써 상대방에게 심적/물적 피해, 끔찍한 악몽,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선사한다는 데 있었다. 그는 혐오의 감정을 다루는데 선수였다.


그의 집 거실 한쪽 벽에는 네팔 용병이 쓰는 '쿠크리' 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네팔을 방문했을 때, 시장에서 오백 원을 주고 구입한 싸구려 이미테이션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물건을 오백 원으로 규정하지 않고 전설적 용병 '구르카'를 신봉하는 용도로 떠받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전장에 나설 때마다 '구르카' 앞에 무릎을 꿇고 고요하게 삼배를 했는데, 그 의식은 그만의 어떤 신성한 작업 절차인 셈이었다.


그는 그렇게 전설적인 구르카 용병이 직접 쓴 무기는 아니지만, 그 용병들이 쓴 무기와 거의 비슷하게 생긴 쿠크리 칼을 숭배하고, 용병의 용맹한 태도와 소수로 다수의 적들을 물리치고야 말겠다는 악전고투의 자세로 저전장에 뛰어들었다.


그의 전투 무대는 주로 유튜브였다. 배달앱의 리뷰란은 아마추어들이나 드나드는 곳이었다. 그의 요즘 공격 대상은 백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모 유튜버였는데, 그 작업은 모 경쟁 클라이언트로(30만 급 유튜버)부터 의뢰를 받은 것이었다. 그는 그의 낡은 멤브레인 키보드 위에 두 손가락을 가지런하게 올려놓고 아주 정직하고 곧은 자세로 말하자면 독수리 타법으로 선제 타격을 시작했다.


“이… 바… 보… 같… 은… 녀… 석… 들…… 얼… 간… 이… 들… 의… 끔… 찍… 한… 자… 식… 들… 아…”


그는 사실, 그들을 동물에 비유하는 욕설을 던지고, 하지도 않은 씹고 뱉는 거짓 행위를 한다고 트집을 잡고, 저렇게 처먹다간 멧돼지가 되고 말 거라고, 때만 되면 벌레처럼 기어 나온다고, 하여튼 간 생각나는 모든 기분 나쁜 말들을 얹어놓고 싶었지만, 이제 너무나 늙어 은퇴할 시기를 지나쳐버려서, 생각과는 달리 생각과 몸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아서, 글자 하나를 입력하고 10분을 휴식하고 또 글자 하나를 입력하고 10분을 쉬어야 했기 때문에, 한 문장을 완벽하게 완성해서 완료 버튼을 클릭하기까지 거의 2시간 이상이 걸려야 했다.


그렇게 입력을 완벽하게 마무리해놓고도 마지막에 오타가 발견되면 노인은 끔찍한 한숨과 병적인 집착에 빠져서, 그러니까 거의 공황상태에 빠진 나머지, 기력을 모두 쇠진해 놓고 다시 회복하기까지 2시간 이상이 걸려야 했는데, 결국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시장에서 퇴물 취급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그의 완벽한 성격 탓에 아무런 문장도 완성하지 못한 채,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거실에 놓인 이제는 너무나 녹슬어버린 쿠크리 칼을 쳐다보곤 자신의 엄혹한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 마감이 되는 꼴을 하염없이 구경해야 했다.


그때, 벽에 전시되어 있던 전설적인 구르카 용병이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쿠크리 칼이 거실 바닥으로 툭 떨어져 버렸다. 그 순간 노인도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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