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공항버스를 탔다.
집으로 가는 340번이 아닌, 공항으로 가는 반대 방향 버스를 탔다. 거의 발작적 충동 탓에…
그렇다고 해외로 나갈 티켓을 끊을 용기도 통장 잔고도 턱없이 나에겐 부족했다. 원인 모를 어떤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를 공항으로 견인한 것일 뿐.
“삑!”
17,000원이 리더기 화면에 경고하듯 나타났다, 금세 사라졌다. 화들짝 놀랐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폈다. 퇴근길에 오른 공항버스엔 의외로 빈자리가 없었다. 만원 버스처럼 빼곡하게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되돌릴 순 없다.
흔들흔들 위태롭게 복도를 서성이다, 끝 쪽 그레이 색 니트를 입은 여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었다. 공항까지는 2시간 이상이 걸린다. 손잡이를 붙잡고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나는 집이 아닌 공항으로 이동 중이었다. 나에겐 돌아갈 곳이 있지만 때론 그 방향을 거스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을 대상에게 저항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취미 아닌 취미는 마치 투렛 증후군에 걸린 환자처럼 반복적인 행태를 띈다.
퇴근 시간과 공항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 걸까?
퇴근 시간,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기묘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힌 채 깊은 명상에 사로잡혀 있는 건지, 최면에 의식이 빠져버린 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지만 집단적이었다. 그들의 취미는 약속이라도 한 듯 어떤 일관성을 갖추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혼자서만 깨어 있었다.
“?요봐 나시가장출” 창속에 비친 여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던졌다. 그 소리는 뒤쪽에서 분명 들려왔다.
“?요네이보 워벼가 무너 이림차 곤치장출 데런그" 여자가 다시 외계어처럼 생긴 말을 건넸다.
나에게?
여자의 혼잣말일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주고받는다. 공항으로 가는 퇴근시간의 버스라면 더욱더…
라디오에서는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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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소리는 김광석의 음성은 분명했지만, 익숙한 듯 동시에 낯설었다. 마치 세상이, 아니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듯했다.
나는 옆자리 여자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으므로, 그 여자에게 리액션을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차라리 시간을 되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깜박 잠에 빠진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반응을 시작했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사람들이 좌석에서 일어나긴 했는데, 거꾸로 그러니까 앞쪽과 뒤쪽이 바뀌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뒤쪽을 바라보며 그러니까 등을 돌리고 뒤로 걸었다. 그런데 아주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보였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도 뒤로 일어서서 그러니까 뒤통수에 또 하나의 눈동자가 박힌 돌연변이처럼, 버스로 올라탔다. 아니 버스에서 내렸다.
나 역시 자리에 일어서서 등을 돌리고 시선을 뒤쪽으로 돌린 채 걸어봤다. 그들을 따라 하지 않으면 왠지 봉변을 당할 것 같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