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그는 명강사가 되고 싶었다. 이미 오래도록 명강사였지만 대외적으로 그의 이미지는 명강사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도마 위에 오른 불쌍한 생선의 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실은 그저 언제 시장에서 도태될지 모르는 아마추어 따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의 인생은 그가 심심하면 사용하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B와 D 사이에 놓인 C의 처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무식해서 사르트르의 문장을 그의 신조로 삼겠다고 선언해놓고도 C가 의미하는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그것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C의 뜻도 모르냐며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사람들을 오히려 거슬려 했다.
'대체 B와 D 사이에 뭐가 있다는 거야? 영문을 모르겠다니까?’ 그는 얼뜨기 같은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했다.
대체 이런 그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아무튼 그는 이번에야말로 명강사가 되어야겠다고, 명강사가 되면 C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느 날 굳은 결심을 했다. 다만 그 결심이 너무 늦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느 날 그는, 찬바람 부는 시내를 혼자서 싸돌아다니다, 갑자기 번뜩 명강사가 되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는 일이 아니겠냐며, 더군다나 그날은 자신이 태어난 날이니 자축하는 의미로, 더 늦기 전에 명강사로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을 받아야겠다고 탁월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한 가지도 아니고 네댓 가지가!
첫 번째 치명적인 단점은 경력이 전무하다는 사실이었다. 강사를 하려면 어디에선가 마이너 무대에서라도 데뷔를 해야 하는데 그에겐 그런 기회 자체가 없었다. 경력도 쥐뿔 없는 인간이 강사가 되겠다고 까불고 설쳐대는 꼴이 아닌가. 게다가 그는 그 흔한 홈페이지조차 오픈하지 않고 집에서 기다렸다. 마치 그는 자신의 집, 침대 위에 심술궂게 툭 튀어나온 대못과 비슷한 처지였다.
경력이 전무한데다가 또한 잘하는 게 단 한 가지도 없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치명적 단점이었다. 도대체 단상에 올라 어떤 주제로 1시간을 떠들어대야 할지, 아무리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어봐도 횟집의 그 흔한 광어 한 마리 같은 것조차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1분 스피치조차 버거워했다.
그에겐 경력도 전무하고 잘하는 것도 없고 또한 말재주도 없었다. 그는 한마디로 앵무새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 앞에서 먼저 대사를 읊어주거나 프롬프터 같은 장치가 눈앞에 없으면 꿀단지 속에 고개를 처박은 어리석은 곰의 처지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겐 경력도 전무하고 잘하는 것도 없고 말재주도 형편없는 데다가, 너무나 무식하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를 가장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머릿속이 텅텅 빈, 진공으로 채워져있다는 사실이었다. 위에서 내가 밝힌 것처럼 그는 B와 D 사이에 C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찌어찌하다가 외우게 되었지만, 그 중요한 C가 지칭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무식쟁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불행하게도 자신이 모르고 산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에겐 경력도 전무하고 잘하는 것도 없고 말재주도 형편없고, 완벽한 무식쟁이며, 거기다가 또 다른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으니, 그것은 그가 무엇이든 단 3일만 기억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 우린 여기서 그가 금붕어 기억력을 소지한 인간이라고 소개하겠다.
그는 자신의 삶이 행복과 불행 사이를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는, 그러니까 줏대 없는 삶을 살아가는 형편없는 존재인데,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자존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 그의 인생이 너무나 불행하고 자신감이 결락된 채로 살아왔다는 사실조차 3일만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으니 어쩌면 그의 인생은 충분히 행복했으리라.
그가 마지막으로 꿈꾸고 있는, 말하자면 명강사가 되고야 말겠다는 인생의 최종 목적지, 그 보람된 삶의 마지막 기착지를 완전히 망각하지 않는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하지만 미안하게도 아직 모든 불행이 끝난 게 아니다. 아직 치명적인 마지막 단점이 남았다.
그것은…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지긋지긋하게 열거한 모든 치명적 단점보다 더 극단적으로 치명적이며, 모든 치명적 단점들을 순식간에 휩쓸어버리는 단점이었으니… 그것은 그가 거울 속에서만 사는 매우 매우 점잖은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침대 밑 그림자 인간도!
도스토옙스키 소설에 나오는 지하에서 사는 인간도!
오디세우스의 모험에 등장하는 동굴 속의 키클롭스 인간도!
그 무엇도 아닌,
오직 관념 속에서만 살아가는
본질도 없고 삶의 목적도 없으며 실체도 없는
허상과 거의 동지인…
실존하는 어떤 인간에게 귀속되지 않고는 절대로 자신의 존재를 증거할 수 없는, 명강사가 되겠다는 꿈같은 것은 그에게 사치에 불과하며 거울 바깥의 어떤 인간이나 품을 수 있는 명강사라는 것은 그저 무력한 목적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불행한 일인지, 행복한 일인지 그 사실을 3일만 지나면 잊어버렸고 자신이 거울 속에서나 살아가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3일째 되는 자정에 깨달았다가 5초 후에 말끔하게 사라져버렸으니, 그의 꿈, 명강사가 되고야 말겠다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꿈이란 것은 그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언제든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B와 D 사이 어딘가, 아니 거울 안에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다짐한다.
“명강사가 되고 말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