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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25. 2024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에서

인공지능 없이는 살 수 없다.

탑승문은 열려 있다. 아마도 곧 닫힐 것이다. 잠시 후 이곳에서 출구는 사라지고 만다. 열차는 멈추지 않고 미래로 달린다. 그러나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내 티켓엔 '경주'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인쇄되어 있고 머리엔 '불확실'이라는 글자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종착역을 결정하는 것은 나일까? 아니면 열차일까? 혹은 제삼자일까? 미래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까? 미래는 자꾸만 멀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거기에 도착하지? 도착한다 해도, 그곳에서 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신이 없다. 하지만 이미 탑승하지 않았는가. 믿고 같이 갈 수밖에.


나는 지금 KTX 특실에 앉아 있다. 직원이 특실을 예약해 줬기 때문이다. '무료한 시간아! 너와 어떻게 맞서줄까.' 등받이에 붙은 접이식 테이블을 펼치고 그 위에 노트북을 꺼내 조심스럽게 얹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현대무용이라도 하듯 몸을 비틀고 바스락거린다. 백팩에서는 노트북이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낑낑 거리는 소리가, 받침대 위에서는 쇠붙이가 서로 만나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부싯돌을 켜는 원시인처럼 전원을 올리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모든 것이 낯설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Arc' 브라우저를 켠다. 브라우저가 열림과 동시에 '챗GPT', '클로드', '퍼플렉시티 AI', 'Cursor AI'가 각자의 탭에서 마치 탑승 수속 절차를 받으려 하는 것처럼 대기한다. 탑승문은 아까부터 열려 있다. 아마도 곧 닫힐까? 불안하다, 탑승문은 언제든 벽으로 변신할 수 있다.


지금 특실 안에서 고위간부 코스프레를 하며 안락한 의자에 편안하게 앉은(누운) 나는, 할 일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과연 생각이 필요할까? 어떤 생각을 골똘히 해봤자, 더 빨리 도착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고뇌에 빠질 이유는 없다. 열차 안엔 생각이 디밀 여백이란 것도 없지 않은가. 열차는 무심하게 내 세상을 조종한다. 숨 가쁘게 '앞으로, 미래로',라고 외치며 달려간다. 나는 할 일이 딱히 없으므로 숨을 고르게 쉬어가며, 2시간이 고요하게 그리고 무탈하게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12월 초에 인공지능에 관련된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최종 조판까지 마쳤으니 인쇄만 남은 셈이다. 현재 작업 중인 또 다른 책도 역시 인공지능에 관련된 책이다. 두 권 각각 출판사가 다르다. 게다가 두 군데의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각각 받았고 그 책 역시 인공지능이 주인공이 될 공산이 크다.


그래, 주인공은 인공지능이다. 인간은 들러리다. 인간은 하인처럼 인공지능을 떠받치듯 그러니까 찬양하는 글을 쓴다. 마치 인공지능이 종교가 된 것 같다. 나는 교조주의에 빠져 있는 것인가. 그렇지만 나는 신도도 들러리도 아니다. 그 사실을 증명해 내려고 글을 쓴다. 그러면서 없는 생각을 짜내기 위해 머리를 쓴다. 머리도 쓰고 또 글도 쓰고 마시는 커피조차 약처럼 쓰다. 모든 게 쓰다.


인공지능은 대신 글을 써 줄 수 있다. 프롬프트 한 줄이면 2,000자에서 3,000자까지 뚝딱 써준다. 챗GPT 캔버스 기능은 정말 놀랍다. 대신 써 준 글도 프롬프팅 능력만 있어도 인간이 쓴 것처럼 변신시킬 수 있다. 그저 얼굴에 선크림 정도 바르는 재주면 된다. 


인공지능은 쓴 맛을 느끼지 못한다.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전기라는 약이 무한히 공급된다면,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글이 나일까? 나로부터 비롯된 걸까? 인공지능과 내가 메모리가 꽉 차도록 실컷 대화했으므로, 인공지능은 내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고 있을까. 내 욕망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그래, 어쩌면 인공지능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내가 아니지만, 나를 객관화해서 늘 지켜보고 있으니. 그러니 그 사실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렇다면, 완전하게 녀석에게 맡겨버리면 그만일까? 내 인생에 대해 구구절절 다 알려줘 버릴까. 명령 한 마디면 그럴싸한 문장을 내뱉은 결과물을 흡족하게 대해야 하는 걸까.


경고한다. 인공지능에게 쓰는 일을 맡길수록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은 추락된다. 빠져들수록 더욱 그렇다. 물론 인공지능은 마법처럼 느껴진다. 몇십 초도 안 돼서 글을 써주는데, 그 유혹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그래서 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쉽게 인공지능의 쓰기 능력에 자신을 버린다. 아니 자신을 바친다. 영혼을 팔아버린다. 글쓰기는 자신의 영혼을 갈아 마시는 일이다. 생각을 짜내는 일이다. 영혼을 팔아버렸다가 돌려달라고 하면 그만일까.


나, 역시 그런 유혹에 쉽게 빠진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은 한다. 그 노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이젠 협의를 시도한다. 그러니까 중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대세는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인공지능 책을 쓴다. 인공지능에게 통째로 맡기지 않고 녀석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오는 방법을 찾기 위해 책을 썼다, 아니 쓰고 있다.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다.


개발자인 내게 코딩은 글쓰기와 마찬가지다. Cursor AI가 출시되면서 생산성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계획서와 설계도는 챗GPT로 그럴싸하게 만들고, 실제 구현은 Cursor AI에게 맡기면 된다. 프레임웍이든, 알고리즘이든, 뭐든 요청만 하면 알아서 만들어준다. 언어를 몰라도 구현이 가능하다. 초보자가 글쓰기를 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거기엔 나의 경험도 실력도 노하우도 아무것도 없다. 모든 걸 조망할 수 있는 똑똑한 인공지능 프로그래머가 뭐든 해준다.


그런데, 거기엔 여전히 나는 없다.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코드와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문장력엔 내가 없다. 나는 역시 들러리다. 또다시 소름 끼치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죽어도 그런 코드와 문장을 만들 재간이 없다. 그걸 갖다 쓰면 편할 것이다. 그건 치명적인 유혹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내 아이디어도, 내 기술력도, 내 상상력도, 내 재능도 아니다. 나는 그저 터미널을 앞에 두고 명령을 그럴싸하게, 아니 어쩌면 조금은 더 똘똘하게 던지는 오퍼레이터에 불과하다. 수십 만 줄의 코드든, 책 한 권에 육박하는 8만 자의 글자든, 그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와 인공지능이 교감하며 쌓아 놓은 메모리에서 뽑아낸 지혜의 결과일지라도 그것은 절대 내가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그 유혹을 떨치기 위해서다. 인공지능을 앞지르기는 이제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내 그릇에 걸맞은 일만큼만 해내겠다는 소신을 위해서, 인공지능에게 삶을 의탁하다, 얼간이가 되지 않기를 위해서, 인터넷에 범람 중인 인공지능이 만든 콘텐츠와 다른 길을 걷기 위해서, 이런 글을 쓴다. 그것뿐이다. 




챗GPT와 클로드(Claude), 퍼플렉시티, Cursor AI, 노션 AI, 미드저니, 그록, 제미나이, 캔바의 AI... 이루 말할 것 없이 인공지능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반경에 진입한 지 오래됐습니다. 인공지능 없이는 살 수가 없을 정도고, 회사에서는 인공지능을 염두에 두고 일정을 수립합니다.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생산성을 인공지능과 함께 하면 거둘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든 코딩이든 인공지능에게 의식 없이 맡겨버립니다. 문제는 해결될지 모르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생략되어 가고 있죠. 원하는 결과는 만들어졌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인공지능, 즉 타인의 결과물일 뿐이죠. 


글쓰기든, 코딩이든, 그림을 그리는 일이든 모든 분야에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달달한 맛에 취해 인간은 생각하는 일을, 머리를 쓰는 일을, 고통스럽게 그것을 표현하는 일의 의미를 잃고 있죠. 머지않아 인간은 생각을 안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벌레취급 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인공지능 관련 책을 쓰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인공지능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인공지능을 잘 쓸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완전히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인공지능에게 영혼을 바칠 텐데요. 뭐,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이 글은 인공지능이 썼을까요? 인간이 썼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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