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함께 견디는 사람이 있어서 힘이 된다.
일본이 정치적, 역사적으로 가장 혐오하는 나라로 인식되어온 것은 오래된 울분의 역사와 시간을 함께한다. 그들과 우리가 서로 화합했던 기억이 실존했는지, 나는 늘 의문스러웠다. 국가라는 이데올로기를 떠나 개인의 삶으로서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일본의 문화 콘텐츠를 접하게 된 것은 바로 그러한 연유다. 일본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개개인으로서 일본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서 내 안에서 늘 꿈틀거렸던, 그들을 향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분노의 감정을 식히고 싶었다.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는 '그들이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가장 솔직하게 반영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를 했다. 내가 본 그들의 문화 속에는 극악무도하며 잔인한 일본인의 모습이 아닌 친근한 이웃과 같은 사람의 향기가 묻어있었다. 친구 및 연인이 주고받는 담백한 이야기, 상처 때문에 가정이 해체되기도 하지만 다시 그 위기를 극복하는 가족의 끈끈한 이야기 등을 통해서 그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잔잔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그들도 사람이었다.
그들의 드라마 또는 영화는 인간의 근원적인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다룬다. 그들은 현실을 차분하게 받아들이지만, 사람 간의 이상적인 관계를 꿈꾼다. 내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극히 혐오적인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일본의 드라마와 영화에 유별난 찬사를 보내는 이중잣대의 시각은, 위에서 언급한 사람 간의 정서적인 따뜻함 그리고 일본 특유의 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 관심이 이제 책에 새롭게 이어지고 있다. 이번 달, '북살림'의 추천도서로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드라마와 영화를 이어나가는 다음의 콘텐츠로 책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일본 콘텐츠에 관한 호감을 유지하게 될지 호기심을 가득 안으며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전 세계 20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인기의 원인 중 하나는 그녀의 간결한 문체다. 그리고 인간의 깊은 내면을 차분하고도 섬세하게 표현하지만 어렵지 않은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그녀의 특징이다. 그녀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물들을 통하여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묘사한다. 우리의 정서와는 약간 동떨어진 일본색 특유의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일본 문화를 처음 접한 사람들에겐 생경스러울 수도 있다. 나는 이미 <심야식당>, <수박>, <농담 아니야>, <안경>,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등의 독특한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접한지라, 거부감 없이 바나나 - 그녀의 필명 - 의 소설을 대할 수 있었다.
<심야식당>에는 독특한 인간들이 출연했다. 나이 먹은 게이라든지, 조폭이라든지 그러나 그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순수했다. 그들의 직업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버팀목에 지나지 않았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1990년대 이후, 일본 드라마와 영화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심야식당은 그녀의 소설이 마치 계속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가 창조한 소설 속의 공간은 커다란 여백 속에 그은 한줄기 선명한 획과 같다. 굵은 획 속에 놓인, 차분하고도 정적인 선 아래에서 사람들은 편안하게 숨 쉬고 서로의 상처를 안았다. 획은 때로 여러 갈래로 가지를 다시 뻗는다. 그 마디 마디엔 각자가 감당해야 할 과거 세월 속의 상처가 담겨있었고, 커다란 획이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따뜻한 공간이 그림자처럼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 세계에서 하나의 규칙적인 리듬이었다.
<키친>이라는 소설은 일본에서 1988년에 발매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돌고 돌아 세월의 긴 다리를 건너 그녀의 소설은 내 손에 안겨졌다. 도서관에서 책이 날아온 후, 책에 관심을 주기 위한 여유가 허락되지 않아 2주 가까운 시간을 책상 위에 방치하다가 아내가 먼저 읽도록 배려했다. 이 책은 방에 홀로 앉아서 읽어야 할 것 같았다. 번잡한 곳이나, 오고 가는 출퇴근 길이나, 회사 같은 너저분한 공간에서 읽을 책은 아니라는 본능적인 감각이 다가왔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공간을 공유하지만, 때로 혼자 있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지 못할 때가 있다. 나는 그렇게 혼자서 키친의 등장인물들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소설 <키친>의 이야기는 내가 즐겨 하는 일본 드라마, 영화의 성격과 비슷한 거리를 유지했다. 사람은 집이라는 아늑한 공간에서 때로는 동고동락했던 가족이 떠나가는 것을 하릴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집은 만남이기도 하지만, 헤어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죽음이 안기는 세월의 무상함 앞에서 외롭고 쓸쓸하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차분한 일본 드라마의 낯익은 풍경을 상상했다. 원래 사람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떠나간 쓸쓸한 집의 구석구석, 외딴 방, 거실, 부엌이 보였다. 집은 사람의 체온으로 따뜻했었고, 사람들의 북적거리는 냄새로 가득 찼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야기꽃으로 만발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 공간은 이내 차가워졌다.
소설 <키친>은 세 가지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두 가지는 등장인물이 같고, 나머지 단편인 '달빛 그림자'는 <키친>는 다른 단편으로 엮여있다. 세 가지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를 겪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죽음이라는 장벽 앞에서 허무하게 잃게 된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의외로 처연했다. 그들은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고 냉정하게 위기를 넘겼다.
위기 앞에서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의연하게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상처를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키친의 등장인물들은 후자에 해당된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의 주위엔 상처받은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또 다른 친구, 새로운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드러나지 않지만, 묵묵하게 옆에서 아픈 상처를 함께 보듬었다. 함께한다는 것은 아픔을 나눈다는 것이다. 옆에 누군가 있어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것이란 말인가? 인간은 원래 혼자여서 고독한 존재라고 하지만, 눈물을 같이 흘릴 수 있고, 슬픔을 잠시나마 공유할 수 있는 가까운 존재로서 더 빛난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 P.7
사람은 의지할 친구마저 사라졌을 때, 특정한 공간 - 집 - 을 고집하게 된다. 집의 특정한 장소로 숨어버린다. 주인공에게 부엌이라는 공간은 숨고 싶은 은밀한 곳이었다. 주인공인 '사쿠라이 미카케'가 돌아가신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화목하게 웃음꽃을 피웠던 가족의 도란도란한 이야기의 장소였을 것이다. 사쿠라이 미카케는 부엌에 그렇게 집착했다. 지독하게 더러운 부엌일지언정 그 공간은 그녀에게 아늑하고 사랑으로 넘치는 공간이었다. 나는 첫 문장부터 가슴이 아팠다. 내가 그녀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기 전이었지만, 그녀의 아픔이 부엌에 그대로 투영되었음을 알았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부엌이라는 공간, 즉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조차 없는 낯선 장소가, 그녀에겐 너무나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부엌이라는 장소는 그녀에게 집착이 아닌, 상처를 치유하며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구원의 공간이었다.
눈물도 마른 포화 상태의 슬픔이 흔히 동반하는 나른한 잠의 꼬리에, 조용한 부엌에 요를 깔았다. 라이너스처럼 담요를 둘둘 말고 잠든다. - P.9
그러나 나는 부엌을 믿었다. 그리고 닮지 않은 이 부자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웃는 얼굴이 부처님처럼 반짝이는 것이다. 나는 그 점에 무척 호감을 품고 있었다. - P.23
'사쿠라이 미카케'는 극도로 정신이 불안한 상태로, 이 세상에 혼자 고독하게 남겨진 쓸쓸한 마음을 담요 - 라이너스 담요 - 에 둘둘 말아 위로하고 있었다.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자신을 안아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세상에서 그녀는 스스로의 담요 - 상처 - 를 둘둘 말아 스스로를 품었다. 상처는 그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나베 유이치'의 뜻하지 않은 제안을 받게 되고, 그녀는 그에게 잠시 의지하기로 결정을 한다. 그녀와 그를 이어준 곳은 결국 집이었고, 그 집의 부엌에서 그들은 함께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견뎠다.
늘 그렇다. 나는 항상 한계점까지 다다르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이번에도 정말 아슬아슬한 시점에서 이렇게 따스한 침대가 주어진 것을, 나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신에게 감사하고 있다. - P.32
마지막 순간의 위기가 닥쳐서 아무런 구원의 희망조차 사라진 시점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꿈꿀 수 있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움직이려 한다면 언젠가 문이 열릴 것이고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막다른 길에서도 주인공은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고, 함께 고통을 나누며 결국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랑을 하게 되면, 항상 전력으로 질주하는 나지만, 구름 진 하늘 틈 사이로 보이는 별들처럼, 지금 같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조금씩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P.42
운명적으로 찾아오는 사랑보다, 가끔은 가랑비에 젖는 것처럼 스며드는 사랑도 소중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조금씩 조금씩 젖어들었고, 의식 속으로 스며들었다. 조급하지 않았으며, 서서히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것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까? 판단은 독자에게 주어진다.
인생이란 정말 한 번은 절망해봐야 알아. 그래서 정말 버릴 수 없는 게 뭔지를 알지 못하면, 재미라는 걸 모르고 어른이 돼버려. 난 그나마 다행이었지. - P.58
훨씬 더 어른이 되면, 많은 일들이 있고, 몇 번이나 좌절하고 몇 번이나 괴로워하고 몇 번이나 제자리로 돌아온다. 절대로 지지 않는다. 힘을 빼지 않는다. - P.60
이제나저제나 나는 슬픔과 암울함 속에서 살아가겠지, 정말 싫었다. 가슴속은 태풍인데, 담담하게 밤길을 걷는 자신의 영상이 귀찮았다. - P.66
각자는 각자의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져 있다. 자신이 실은 혼자라는 사실을 가능한 한 느끼지 않을 수 있어야 행복한 인생이다. - P.80
위기를 견디는 힘은, 절망의 순간에서 빛을 발할지도 모른다. 어려움을 겪어도 좌절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아이와 어른의 큰 차이점이다. 인생은 우리에게 언제나 고통을 안긴다. 괴로움에 싸여, 고독함에 묻혀 그 속에서 허우적댄다고 하여 아무도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 상처를 견디는 것은 바로 자신의 힘이다. 우리의 인생은 불완전한 것으로 가득 쌓여있다. 불만을 토하고 짜증 섞인 투정을 부려도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세계는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깐,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는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니깐 다른 일에는 대범하게, 되는 대로 명랑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 - P.110
사람들은 모두, 여러 가지 길이 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하는 순간을 꿈꾼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지금 알았다. 말로서 분명하게 알았다. 길은 항상 정해져 있다, 그러나 결코 운명론적인 의미는 아니다. 나날의 호흡이, 눈길이, 반복되는 하루가 이렇게, 정신을 차리니 마치 당연한 일인 듯 낯선 땅 낯선 여관의 지붕 물구덩이 속에서 한 겨울에, 돈가스 덮밥과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P.131
키친 속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는 상처를 겪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쓰러지지 않았고 서로 견뎌주는 힘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섰다. 그들의 옆에는 위기를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 존재했다. 상처를 경험하게 되면 큰 충격 속에서 오히려 담담해질 수 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면은 상처를 감싸고 견디기 위한 치료 프로세스를 작동한다. 하지만 버티기 힘든 상황이 찾아오면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견디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며칠 전에 포스팅했던 영화 <Always>가 떠올랐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녀는 현실 속에서 옛사랑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으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무거운 상처를 견디는 성장의 과정을 보여줬다. 그녀는 환상 같은 사건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대면했고,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1988년도에 웨이트리스를 하며 <키친>을 썼다고 하는데, 영화 시나리오를 쓴 사람과 어떤 정신적인 교감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공상을 해본다.
세 번째 단편인 '달빛 그림자'에 대해서는 자세한 리뷰를 생략한다. 분량이 짧기는 했지만, 가슴을 저리게 하는 감동이 있었다. 그 감동은 직접 읽으면서 느꼈으면 한다. 아직까지 나에겐 순수한 철없던 어린 시절의 소년 감성이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상은 치열하고 무섭다. 싸워서 이겨야 하는 밀림의 생존법칙은 내 삶에 그대로 살아 숨 쉰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을 사랑하지만, 억지로 권장하는 계몽적인 글은 싫어한다. 나에게 있어서 <키친>은 저녁노을의 햇살이 바다에 옅게 흩어지는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내 마음이 훈훈하게 풀어졌다.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무지개와 같은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한 차례 여행이 끝나고,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다시 만나는 사람이 있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 스쳐 지나가는 사람. 나는 인사를 나누며 점점 투명해지는 듯한 기분입니다. 흐르는 강을 바라보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 P.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