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10. 2016

고등학교 때 가장 재수 없었던 선생에게 복수하기

실험 : 짧은 단편 소설을 쓰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에세이를 썼습니다. 글을 쓰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남몰래 시를 쓰기도 하지만, 조금씩 소설도 써보고 있습니다. 아직은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경험한 사실과 상상력을 배합하여 짧은 단편을 한 번 써봤습니다. 적지 않은 비속어들이 나옵니다. 양해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재수 없었던 선생에게 복수하기."

"독사 또는 마녀라고 불리던 그 선생을 잘 나타내 주는 인물을 만들어 보라."




교실 전체가 정적에 휩싸였다. 고개를 슬며시 옆으로 돌렸다. 옆자리에 멍하게 앉아있는 녀석의 노안을 들여다봤다. 사시나무 떨듯이 파르르 떨고 있는 녀석의 안면근육이 안쓰러웠다. 참나... 누굴 걱정하고 있는 건지. 내 얼굴이야말로 퍼렇게 질려버려서 땅이 꺼질 듯 한숨만 쉬고 있는 주제에 말이다.


“딩동댕동~ 딩동댕동~”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심장을 우지끈 밑으로 떨어뜨렸다. 나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그래 포기하면 편해. 어차피 안될 일인데, 맘 편하게 받아들이자.” 

짝꿍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는 포기한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 느긋함의 진수를 보여줬다. 호연지기를 품은 내 기백이 대견했다. 나이는 어린 녀석이 말이야 마음가짐도 넓고 긍정적이란 말이지. 장차 이 나라? 아니 이 반을 크게 이끌어갈 재목감이 아닌가?

“야. 인마 걱정하지 마!” 

내가 말했다.

“이 자식 이거 아주 제정신이 아니 구만…… 아주 귀싸대기가 한번 시뻘겋게 물들어야 정신을 차리지! 세게 한대 처맞고 맞은 데 또 한대 더 맞아야 네가 정신을 차리지 응?” 

그 녀석이 말했다.


“야. 조용해! 담임 들어온다.” 

뒤에 앉은 또 다른 녀석이 지껄였다.

두꺼운 해설서 한 권을 교과서 밑에 깔았다. 그렇게 하면 왠지 문제를 잘 풀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알 수 없는 미신 같은 행동이었다. 그 선생의 패턴은 종잡을 수 없었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예측조차 불가능했다. 어느 날은 10일이니 10번을 부른다던가, 뜬금없이 맨뒷열을 몽땅 부른다던가, 대각선을 기준으로 일으켜 세운다던가. 

내가 두려워한 것은 수학 문제의 해답도 아니었고 난해한 풀이과정의 설명도 아니었다. 단지 문제가 틀릴 경우 따귀를 세대씩 맞아야 한다는 거, 오직 그것이 제일 두려웠다. 

학교에 오래도록 내려오는 해묵은 전설들이 있었는데, 선배 중 한 명이 그 선생에게 따귀를 맞아 100미터 밖으로 날아갔다느니,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그만 목뼈가 부러졌다느니, 옥수수가 튕겨나가서 복도에 굴러떨어졌다느니, 이런 공포스러운 괴담들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남자들만 가득 차 있는 칙칙한 교실이라 할지라도 수학 문제 따위를 못 풀어서 따귀를 맞는다는 건, 사나이 자존심상 허락하지 않는 문제였다. 어쨌든 내가 옥수수 털리는 DayofTheDay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선생이 지목하는 방식을 나름 심층 분석하여 절대 안전한 자리를 찾곤 했다. 

하지만, 마음을 비운 그날, 운명의 신은 처참하게 나를 비켜갔다. 침을 튀기며 주판을 튕기던 내 계산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선생은 나를 지목했다. 나는 우물쭈물 어찌할 바를 모르며 옆에 앉은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허나 그 녀석의 동공은 이미 극도의 긴장을 넘어 지진을 하고 있었고, 입에서는 마치 옐로 스톤이 용암을 분출할 것처럼 거품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칠판 앞에 섰다. 그리고 혼자서 신음을 아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남녀호랑교”의 사이비 교주가 나지막이 그들의 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의식처럼 보였다. 

“칠판은 녹색이고 하얀 건 분필이라”
“칠판은 녹색이고 하얀 건 분필이라”

머릿속엔 온통 녹색과 하얀색이 춤을 췄다. 그리고 녹색은 점차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야 이 인마 나와 됐어. 칠판 앞에서 기도라도 하냐?"

수학 선생은 닥치고 뺨을 내밀라 했다. 그리고 이를 꽉 악물라 했다. 그는 마치 일제의 앞잡이, 순사 같았다. 입에 재갈을 물리고 없는 진실을 파헤치려는 듯했다. 그는 며칠 굶은 승냥이 같았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뱉고, 모든 욕망에서 달관한 사람처럼 뺨을 내밀었다. 

“철썩!” 대낮에 별이 번쩍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아는가?
그대여! 난 대낮에 환한 별을 보았도다.

정말, 대낮 환한 교실에 별들이 떠다녔다. 나는 원수에게 나머지 뺨을 내밀라는 격언에 따라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한쪽 뺨을 쑥 내밀었다. 또다시 “철썩” 둔탁한 소리가 났고, 양쪽 뺨의 피부 온도가 급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픈 것이 아니라 사나이 체면에 얼굴이 홍당무 색으로 변한 것 때문이었다.

“이 자식 봐라~ 아주 당당하네그려, 그래 어디 이건 어떠냐”

수학 선생은 오른쪽 손목에 강한 스냅을 튕기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것은 마치 1톤의 육중한 철문이 크게 열었다 다시 닫히는 것 같았다. 쿵 하며 살갗을 마찰하는 소리는 내 뺨으로부터 출발하여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을 줬다. 

나는 반대쪽 책상 한 쪽 구석으로 나뒹굴었고, 입술 끝이 찢어졌는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수학 선생도 생각한 강도보다 세게 때렸다고 생각했는지 동정심을 던지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냉랭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습을 하라고 한 마디를 내뱉고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사람처럼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피를 본 이상, 내가 힘없는 학생이라고 가만히 당하고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선생이고 뭐고 나발이고 내 눈엔 복수심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야 이 자식아. 담임한테 복수할 방법 없냐?” 
“이 자식은 아까부터 뭐가 좋다고 빵만 처먹고 있어, 뭐 복수할 좋은 방법 없냐고” 

녀석에게 지껄였다.


“밤에 학교 나갈 때 담임 몰래 쫓아갔다가 뒤통수 한 대 날려버리는 건 어떨까?” 

녀석이 말했다.
“미친놈 그러다가 잡히면? 아주 뼈가 가루가 되도록 처맞으라고? 이거 아주 겁 대가리를 상실한 놈일세”

내가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네가 수학을 마스터해버려서 그 선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는 건 어떨까? 흐흐흐” 

녀석이 이기죽거리며 말했다.


“미친놈, 지구가 망하지 않는 이상에야 내가 수학을 잘하는 일은 없을 거야.. 결코 네버, 푸하하” 

나도 웃었다.

“수학 선생 집 주소를 일단 알아내는 거야…… 그리고 그 집 대문 앞에 밤마다 찾아가서 변 테러를 해버리는 거지……” 

녀석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네놈이 직접 해주는 거냐?” 

내가 하찮은 놈을 상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담임 등에 쪽지를 붙이는 건 어떨까? 이를테면, 나는 바보입니다. 이런 거 말이야." 

녀석이 말했다.


"음... 괜찮긴 한데 좀 약한 거 같아. 차라리 '제 거시기가 너무 작아서 고민입니다.' 이런 걸 차라리 붙이는 건 어떨까? " 

내가 말했다. 


"음 좋긴 한데... 누가 붙이지? ㅋㅋㅋ 미친놈... 푸하하하" 

우린 뒤집어졌다.

한동안 실컷 헛소리를 나누며 웃고 나서 우린 서로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봤다. 복수를 해야 할 장본인은 난데 녀석들은 매 맞은 내가 되어 이런저런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뺨은 얼얼했다. 수학 문제 하나 제대로 풀지 못 해서 찾아온 쪽팔림은 왁자지껄한 녀석들과의 거친 대화 때문인지 어느새 잊혔다. 수학 선생에게 꼭 복수하고 말겠다는 증오감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유쾌한 녀석들의 위로 때문인지 아픈 기억은 사라졌다.


나는 수학 정석을 만지작거리며 중고 서점에 이걸 팔아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잠시 고민을 하다, 어떤 굳은 결정을 하고 책을 덮었다.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나에게 글쓰기란?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