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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09. 2016

남자 셋

실험 : 짧은 단편 소설을 쓰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에세이를 썼습니다. 글을 쓰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남몰래 시를 쓰기도 하지만, 조금씩 소설도 써보고 있습니다. 아직은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경험한 사실과 상상력을 배합하여 짧은 단편을 한 번 써봤습니다. 적지 않은 비속어들이 나옵니다. 양해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캠퍼스에는 초롱초롱 빛나는 신입생들로 활기를 띤다. 파릇파릇 피어나기 시작한 봄꽃의 향기가 은은하게 다가온다. 저 멀리 해맑은 웃음을 머금은 신입생들이 보인다. 그들의 미소를 바라보니 덩달아 내 기분도 상쾌해진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어디선가 와장창 무너지는 소리에 품었던 희망이 깨져버린다.

“형~ 어디 가요?”
녹슨 톱으로 나무를 억지로 써는 듯한 괴성이 뒤에서 들린다. 나는 짧은 꿈에서 깨어난다.

“이런 썩을…… 개자식……”

경쾌한 발걸음은 그렇게 중단되고 만다.

“야! 어디 가긴 어디 가. 당연히 공부하러 도서관 가지. 칙칙한 복학생이 할게 뭐 있겠냐? 그러는 넌 어디 가냐?”
나는 비참한 기분이 든다. 이 파릇파릇한 날씨를 앞에 두고 칙칙한 도서관에 묻혀 공부나 하고 있어야 한다니, 이건 말이 안 되는 짓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대한 모독 행위가 아닌가?

“에? 저는 형한테 라면이나 하나 얻어먹으려고요 헤헤“

“미친놈! 내가 왜 너한테 라면을 사주냐? 벼룩의 간을 빼어먹을 놈아! 맨날 널브러져 있는 복학생한테 얻어먹을 궁리만 말고 좀 사봐라”
내가 한심스럽게 녀석을 쳐다보며 말한다.

“형! 근데 호철 형 못 봤어요?”
녀석이 딴청을 하며 키득키득거리며 말한다.

“어. 못 봤어. 곧 오겠지 뭐. 오늘 수업은 오후에 있지?”

“네. 오늘은 정 교수님 수업이에요……” 

아…… 그 노처녀……

"철인아~~~~"
호철이 마침 멀리서 달려온다. 뭐가 그리 좋은지 상글벙글하다. 별로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 면상이다.

강의실은 어리둥절한 학생들로 꽉꽉 채워지고 있다. 며칠이 지났지만 복학생과 기존 학생들 사이에는 섬찟한 경쟁의 기류가 흐른다. 그들은 복학생인 우리를 심하게 숙성된 김장 김치 보듯 쳐다본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을 비웃는다.

“짜식들,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피래미 같은 놈들, 너희들도 곧 차례가 온다. 가서 피똥 한번 싸 봐라.”
뭐 이따위의 하찮은 상상을 하며 그들과 눈싸움을 펼친다.

그 녀석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사바나의 황량한 초원 지대…… 젊은 왕의 영역에 몰래 침범한 퇴물 사자처럼…… 우리를 그런 퇴물 취급하듯 쳐다본다. 수업이 시작된다. 집중이 안 된다. 고개는 까딱까딱 밑으로 떨어진다. 예상대로 정 교수의 수업은 지루하기만 하다. 내 머리가 굳어버린 걸까? 도대체 한 마디조차 알아들을 수가 없다.

"설마 미래의 내가 프로그래밍 따위는 하지 않고 있겠지?"
라고 상상한다. 내일 있을 소개팅이나 생각하며 2시간을 때운다.

“형! 88학번 형들이 축구 한 게임하자고 하는데요? 같이 가시죠~”
수업이 끝난 후, 철인이 말한다.

“야! 날도 더운데 무슨 축구냐. 난 그리고 개 발이라 축구 같은 거 안 해. 난 집에 간다.”
호철이 말한다.

“나도 집에 갈란다.”
내가 호철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한다. 군대에서 날아가는 돈가스라 별명 붙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형 그러면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돼요? 제가 이따가 떡볶이 쏠게요!”
녀석이 말한다.

호철과 나는 운동장 한 구석에 앉는다. 별로 할 일도 없는 우리는 괜히 시계만 만지작거리며 바쁜 척한다. 멀리 종횡무진 운동장을 헤집고 뛰어다니는 철인이가 한심…… 아니 안쓰러워 보인다.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키는 땅딸보 같은 놈이 그래도 구르는 재주는 있나 보다.

“하아…… “
탄식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 녀석 뛰는 걸 가만 보니 트렁크 팬티 한 장만을 아슬아슬 걸치고 있다.

“헉! 아니, 지가 무슨 밀림의 왕자 타잔이라도 되는 줄 아나? 말이 필요 없네 그려. 도저히 못 봐주겠다.”
이것은 정말 아수라장 그 자체다.

”여학우들이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데 제정신인가?” 

호철이 인상을 찌푸린 채 말한다.

저 얇은 팬티 한 장이 만에 하나 찢어지기라도 한다면, 우린 차마 눈뜨고 못 볼, 몹쓸 광경을 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녀석! 사차원이라고 과에 소문이 자자했지만, 이 정도로 간이 배 바깥으로 탈출한 놈 일 줄은 몰랐다. 여기저기 응원의 함성과 웃음이 터진다.

"뭘 응원해? 응?"

녀석은 어느새 스타가 된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익살스러운 녀석의 얼굴을 더욱 뻔뻔하게 만든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녀석이 헐레벌떡 이곳으로 뛰어온다. 멀리서 뛰어오는 녀석의 팬티 가운데 숨은 물건이 흉물스럽다.

“저런 숭한 자식…… “
뒤에 앉은 여 후배들은 뭐가 좋은지 아주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자지러진다. 우리는 저 녀석의 같은 과 선배라는 것이 후회스러웠다.

“야 우리 휴학계 내러 가자. 저 웬수 같은 놈!”
호철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그러자 그래. 쪽팔려서 못 살겠다. 언제부터 전산과가 이 모양이 됐냐.”
나는 망치를 찾는다.

우리는 녀석을 모른 체하고 교문으로 향한다. 어느새 바지를 갈아입었는지, 멀리서 녀석이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혀어어어엉~ 같이 가요~ 떡볶이 먹으러 가요~~”
우리는 발걸음을 더욱 빨리 재촉한다. 이 구역의 미친놈이 있다면, 바로 저 녀석일 것이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형들 왜그래요오. 같이 떡볶이 먹기로 해놓고 이러기에요오? 내가 쏜다고 했잖아요오!”

“야. 우리 아는 체하지도 마라. 쪽팔려 미치겠다. 너 학교에 소문 다 나게 생겼다.”
호철이 말한다.

“에이 뭐 어때요? 저 그런 거 하나도 안 쪽팔려요…… 형~ 빨리 가요. 소향이도 거기 간대요! 형 좋아하잖아요. 제가 열심히 할게요오오! 우헤헤헤”
녀석이 음흉한 얼굴로 키득거린다.

뭘? 열심히 한단 말인가? '소향', 그녀가 누구인가. 기회주의자 같은 녀석이 호철의 빈틈을 노린 것이다. 난데없이 잽 한방을 맞은 호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다. 녀석은 해맑게 웃으며 호철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그래~ 가자아~~”
호철은 싱거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문득 보이지 않는 의욕이 불타오르는 듯하다.

"야 이 자샤. 넌 사리분별도 안 되는……. 소향이가 뭘 보고 말이야…… 널 위해 희생정신이라도 품어본대? 정신 차려 이 자식아.. 흐흐흐"
내가 말한다.

호철의 동그란 안경이 햇빛에 뻔뜩댄다. 나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 남자들 세명이 소주도 아닌 즉석 떡볶이에 열광할 줄이야. 당연히 여자 때문이 아니다. 강조한다! 우리는 술잔을 부딪히는 대신, 떡볶이와 콜라 한 잔을 들이켜며 시시콜콜한 연애담이나 여체의 신비와 같은 이야기를 침을 튀겨가며 지껄인다. 이야기는 점점 수위를 높인다. 나는 이 경건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참 좋다.

그때였다. 분식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낯익은 그녀. 소향이다. 호철은 갑자기 수다스럽게 떠들던 마우스를 닫아 버린다.

“야 이 자식아…… 왜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냐?”
“아! 내가 뭘!”

“선배들 안녕~ 저 여기 앉아도 되죠?”
그녀가 말한다.

“그럼~ 소향아 여기 앉아. 떡볶이 다 익었어. 빨리 먹어~”
“그래그래…… 빨리 앉아.”

호철이가 흥분하여 부르짖는다.

그녀는 철인에게 아까 너무 재밌었다는 둥, 충격적이었다는 둥, 우리과에 명물이라는 둥, 이런저런 얘기들을 부끄러운 듯 속삭이며 말한다. 나는 호철의 얼굴을 잠시 쳐다본다. 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는 이미 천사의 노예가 되려고 작정한 녀석 같다. 미친 녀석이 아닌가? 평상시 처먹는 대로 먹을 것이지, 어울리지 않게 다소곳하게 떡볶이 하나를 찍어서 먹는 것 좀 봐라. 내가 이러려고 녀석을 분식집으로 데리고 왔나 자괴감이 든다.

사실 소향이 천사 같은 이미지긴 했다. 공부 잘해, 착해, 얌전해, 여성스러워…… 선배들한테 깍듯하게 잘 대해…… 그녀는 천사의 이미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게다가 이런 별 볼 일 없이 삭아버린 복학생들과 어울려서 떡볶이도 같이 먹어주고……

그녀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우리가 떠드는 시시콜콜하고 남자 냄새 물씬 풍기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기울여준다. 신기한 이야기를 처음 듣는 호기심 가득한 소녀처럼 말이다.

그때다. 철인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아참! 저 있잖아요. 형! 저 얼마 전에 면허 땄잖아요. 운전이 너무 하고 싶어서 아침에 아빠 차 몰래 가지고 왔는데요. 같이 시승 한 번 하실래요? 소향아 너도 같이 가자!”

“뭐라고? 오늘 삶을 아작 내라고? 장가도 못 가보고 인생 종 치고 싶지 않다. 이 짜샤……”
내가 말한다.

“아냐. 왠지 구미가 당기는 거 같지 않냐? 바람이라도 쐴 겸 드라이브나 하고 오자. 설마 지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깐 저러는 거 아니겠어?”
호철이 유혹하는 소리로 말한다.

"그래…… 후배 잘 못 만나서 오늘 인생을 마감하는구나 ……"
내가 생각한다.

“소향아~ 너도 같이 갈 거지?”
호철이 부들부들 떨며 그녀에게 말한다.

“네? 글쎄요…… 공부해야 하는데…… 중간고사 얼마 안 남았잖아요”
“에이…… 넌 원래 공부 잘하니깐…… 오늘은 쉬어도 돼. 빨리 가자~”
“……”

대답이 없는 그녀의 손을 억지로 끌고 나가는 철인. 대단한 붙임성이다. 호철이도 못 잡아 본 손을 끌고 차로 향한다. 호철의 눈이 소향의 손을 움켜쥔 철인에게 향한다.

어느새 녀석의 손은 운전대를 잡는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서 불안한 듯 정면을 응시하며 안전벨트가 안전한지 괜히 잡아당겨 본다. 아직까지는 한 번도 사고를 낸 적이 없다고 말하는 뻔뻔한 녀석의 입을 꼬매 버리고 싶다.

내가 무서운 건 해맑게 웃고 있는 저 녀석의 천진난만한 표정이다. 차는 부르릉 불안한 출발을 한다. 헉, 사이드도 안 내리고…… 출발부터 삐거덕 거린다. 도로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지만 이 녀석, 30킬로미터의 저속으로 도로를 엉금엉금 기어간다. 뒤에서 클랙슨이 울리고 난리가 난다. 사람들은 우리를 추월하며 온갖 쌍 욕을 내뱉는다. 내가 괜히 죄를 지은 것 같아 고개를 숙인다.

이 녀석 아직까지 차선 바꾸는 것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네 집에 놀러 가자고 하는 뻔뻔한 녀석. 차는 겨우 일반도로를 지나쳐 서부간선도로에 진입한다. 어느덧 속도가 붙는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들어오는 건 알았는데 나가는 곳이 어딘지 모르겠단다. 서부간선 처음 타본단다. 등 짝에 땀이 난다고 하는 녀석의 긴장이 우리를 더욱 두렵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인천까지 여행 아닌 여행을 한다.

유턴이 안 되는 차라서 능청스럽게 말하는 짜증 나는 녀석의 후두부를 강타해 버린다. 내가 너무 세게 때려버린 것일까? 갑자기 차가 균형을 잃는다. 운전에 서툰 녀석이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는 사이에 땀으로 뒤범벅이 돼버린 운전대가 한쪽으로 미끄러진 것이다.

6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던 자동차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자동차는 이제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불능의 상태로 진입한다. 왼쪽으로 휘청거리다, 다시 오른쪽을 휘청거린다. 뒷좌석에 앉은 녀석들의 비명이 도로 위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비규환이다. 불지옥에서 육신이 타 들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몸짓과 같다. 좌우로 출렁이던 차는 이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야 이 자식아! 브레이크 밟아 브레이크!”
“야 그렇게 급 브레이크를 밟으면 어떡해! 아니 핸들 똑바로 잡아!. 야.. 아악!”
“형! 이거 어떡해요…… 어헉!”

천우신조다. 도로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다. 차는 빙글빙글 몇 번을 회전한 끝에 고가도로 밑 기둥 앞에서 간신히 정지한다. 우리는 눈물, 콧물로 얼굴이 범벅이 된다. 다친 사람이 없는지 나는 안전벨트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놓는다. 보닛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뒤에 앉은 녀석들은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고 있다. 남녀의 구분 없이 그들은 고통을 나눈다.

소향이 소리를 지른다.

“아 18! 죽고 싶으면 혼자 죽든지!”
“시집도 못 가보고 죽을 뻔했잖아! 아 (18 * 100), (18 * 100)!!!”

우리는 입을 조용히 다문다. 그녀는 옷을 몇 번 훌훌 털더니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트렁크를 열고 익숙한 듯이 안전표지판을 10미터 뒤에 세워둔다. 그리고 보닛을 한 번 열어 보더니 다시 닫는다. 그리고 철인에게 말한다.

“야. 당장 내와 이 자식아!” 

철인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문을 연다.

그녀는 차 상태를 확인하고는 서부간선에서 유턴을 해버린다. 중앙 분리대를 덜컹하고 넘어버린다. 차가 울컥하자. “아  (18 * 100)!” 하고 욕을 더 내뱉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차는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세월은 흘렀다. 나는 목숨을 겨우 건지고 이렇게 그때를 회상한다.

철인은 굴지의 기업인 오라클에 입사하여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 후문에는 딱딱한 외국계 기업 문화를 끈적끈적하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어쩌면 거기서도 팬티만 입고 축구를 했나 보다. 여자를 유달리 좋아하던 호철은 20살 연하의 멕시코 여자를 만나 텍사스에서 잘 산다. 그리고 소향? 우리는 다시 그녀를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아니, 우리는 그녀를 피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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