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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25. 2016

나의 감정은 슬픔으로 물들어 버렸다.

5분, 압도적인 오프닝에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있었다.

남녀는 서로 만나서 사랑하고 때로 결혼의 인연을 맺는다. 남녀는 밝은 미래를 약속하고, 함께 꿈을 펼쳐나간다. 부부로서 함께 꿈을 꾼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는 것, 서로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것,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것, 서로에게 의지가 된다는 것이 아닐까? 어떤 우연이 겹치고 겹쳐 인연이 되고 사랑의 결실까지 이어지게 하는 걸까? 사랑한다고 하여 무조건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것은 아닐 터. 짧게 주어진 삶을 생각할 때, 사랑의 인연을 맺은 아내의 존재는 나에게 더욱 각별하다.

결혼 생활의 참 모습은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우연히 아내와 접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있다. 영화 ‘Up’이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칼과 엘리다. 모험가를 꿈꾸는 둘은 소꿉친구다. 둘은 함께 자라다가 성인이 된 후 결혼까지 이어진다. 행복과 아픔을 겪으며 함께 늙어간다는 이야기를 담은 짧은 5분. 이 압도적인 오프닝에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나는 5분의 장면이 전하는 감정에 집중했다. 5분에 압축된 장면은 언젠가 우리 부부 중의 한 명이 감당해야 할 운명이었다.

짧은 5분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칼과 엘리는 가진 것이 별로 없다. 따뜻한 축복 속에 두 사람은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들은 모든 순간에 함께 한다.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함께 노력하고 꿈을 설계하며 내일을 기대한다.

그들이 직접 깎고 손질하며 꿈꾸던 집을 손에 넣게 되었을 때, 나와 아내가 힘겹게 얻은 첫 집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역시 그들처럼 알뜰살뜰 아끼고 저축하여 집을 장만했다. 직접 바닥을 쓸고 닦으며 가슴에 행복만이 충만했던 그날 밤을 회상했다. 잠들 수 없던 그날 밤, 우리는 희망찬 미래를 설계했다.

세월이 점차 흘러갔지만, 그들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설렘의 감정만이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었기에 칼과 엘리는 행복하다. 오후의 한가로운 시간,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같은 미래를 꿈꾼다.

그들은 아이를 원한다. 아기를 위한 공간을 함께 준비한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불행이 엄습한다. 아내에게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한다. 남편은 실망한다. 물론, 아내는 남편의 실망보다 더 큰 좌절을 겪는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말없이 안아주며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그 장면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두 사람이 소꿉친구였을 때 공유했던 추억 보따리를 선물한다. 그것은 ‘My Adventure Book’이라는 책 한 권이다. 그 책에는 두 사람이 어릴 적 꿈꾸었던 '파라다이스 폭포의 모험' 계획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위기를 헤쳐나간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는다. 사랑은 어떠한 고난에서도 쓰러지지 않도록 더 큰 힘을 낳는다. 두 사람은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작고 투명한 유리병에 동전을 함께 모은다. 동전은 두 사람이 그리는 미래다. 동전은 땅에서 하늘로 점차 높이를 쌓는다. 유리병이 꽉 차일 때쯤 두 사람은 목표했던 곳으로 모험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는가? 예측할 수 없는 사고가 쉴 새 없이 터진다. 그러나 칼과 엘리는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그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두 사람은 용기를 잃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오히려 더 깊어간다.

그렇게 세월은 말없이 흐른다. 두 사람은 청춘을 지나 어느덧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된다. 하지만 절대 늙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변치 않는 사랑이다. 두 사람이 황혼 아래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너무나 생생하다.

머리가 희끗해지도록 나이를 먹었지만, 둘만의 약속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며 꿈을 잃지 않으려 한다. 재즈가 흘러나오는 밤, 거실에서 두 사람이 춤을 추는 장면이 로맨틱하다. 하지만 그 옆에서 빛을 잃어가는 촛불,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이 영원할 수 없다는, 언젠가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는 촛불과 같은 운명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함께 한다. 꿈을 기억한다. 시간은 너무나 멀리 달아났지만, 꿈을 잃을 수 없다. 칼은 모험을 위한 티켓을 구매하고 늦은 꿈을 이루려 한다. 하지만 엘리는 나을 수 없는 병을 앓게 된다. 그것은 그들의 마지막 이별을 뜻한다. 엘리는 말없이 ‘My Adventure Book’을 칼에게 돌려준다. 자신은 이제 생을 다하여 멀리 떠나야 하지만, 칼은 꿈을 잃지 말고 계속 나아갈 것을 청한다.

칼의 볼을 어루만지는 엘리의 손에서 또다시 눈시울은 뜨거워진다. 다시 엘리의 손을 꼭 잡아주는 칼의 마지막 애틋함이 내 마음에 전달된다. 그렇게 칼은 엘리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선물한다. 장면이 바뀌고, 어두컴컴한 장례식장에 홀로 앉아있는 칼의 모습과 대비되는 외로운 풍선이 내 가슴을 더욱 미어지게 한다.

부부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 한다. 언젠가 이룰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꿈은 그저 잊힐 과거의 추억으로 사라진다. 칼은 마지막 풍선 하나를 부여잡고 집으로 쓸쓸히 향한다. 그리고 세상과의 소통을 닫아버린다.

영화는 초반 5분 동안 부부의 인생을 압축해서 보여줬다. 인생은 짧다. 두 사람이 사랑한 순간도 언젠가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더 사랑하고 아끼고 좋은 말만 하자! 서로에게 상처의 말을 하지 말자! 그리고 사랑을 잃지 말자! 바로 그것이었다.

나와 아내가 함께 꾸는 꿈은 무엇일까? 소박한 행복을 바라는 우리 부부는 헛된 꿈 - 남들과 비교하여 더 많은 것을 갖는 것 - 을 꾸지 않기로 했다. 지금보다 조금은 더 유쾌하고 즐겁게 살자고, 물질적인 소유욕이 행복을 좌지우지하게 내버려 두지 말자고 말이다. 우리는 마땅히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