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비대해진 글의 몸집을 좀 줄이자.
내가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을 때, 그때의 순간을 떠올렸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 했던 시절이 있었다. 머릿속에 가득 찼던 복잡한 생각들…… 이를테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걱정, 사람들과의 건조한 관계 등등 갖가지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싶었지만, 나에겐 그 생각들을 글로 풀어낼 재주란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쓴 멋진 글을 볼 때마다 부러운 마음만 앞섰다. 마음속에서 조바심이 났다. 이미 늦었는데, 더 뒤처지게 될까 봐 안달이 났다. 나에겐 소재도 없었고, 글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도 없었다. 한 마디로 나는 백지였다. 글을 썼지만, 분량은 늘 걱정거리였다. 길게 쓰고 싶었지만, 생각대로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생각은 복잡했지만, 머리를 쥐어 짜내서 겨우 두 줄, 세 줄만을 만들어냈다.
닥치는 대로 썼다. 무작정 휘갈겼다. 주제도 없었고, 문장도 산만했고, 흐름도 원활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썼다. 부족한 글감을 위해서 책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굳어버린 대뇌의 회전을 위해서 다양한 입력들 – 책, 다른 사람의 글 - 을 쏟아부었다. 쓰다 보니 양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단락과 단락 간에 연관성과 개연성은 떨어졌지만, 어쨌든 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부족했던 양이 늘어나니 다른 욕심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글을 써야겠다는 열망이 더 강해졌다. 정리된 분류체계가 필요했다. 블로그의 메뉴 체계를 정리하며,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직장에서 현재 수행 중인 업무, 얽히고설킨 사람들 간의 이해관계, 회사에서의 권모술수와 정치, 평화로운 가정의 일상, 주로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이 첫 번째 글의 소재가 되었다. 수행 중인 업무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기 위한 차원으로 글은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쓸 내용들이 늘어나면서 분량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수두룩하게 쌓여갔다. 정리할 업무들은 태산이었고, 생각들은 글로 탄생되길 기다렸다. 글은 비교적 술술 풀렸다. 세 줄 쓰기 힘들었던, 어린 나는 과거로 잊혔다. 하나의 주제를 선택하여 글을 쓰면 또 다른 주제가 연관되어서 떠올랐다. 내가 천재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두 시간이면 하나의 글이 완성되었다. 한 마디로 글쓰기에 폭주했고, 늘어나는 양을 바라보며 흐뭇했다. 부러울 것이 없는 시절이었다.
내 글은 비대해졌다. 블로그 이웃들은 늘어났고, 쓴 글도 성처럼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에 썼던 글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문제점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논점을 벗어나 자꾸 엉뚱한 곳에서 겉돌기만 하는 글, 주장하는 것이 명료하지 않아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글,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은 채 서론만 이어지다가 갑자기 결론을 내는 글, 문장 간의 연관성이 없어 플롯이 탄탄하지 않은 글, 여전히 부족한 어휘력과 상상력에 기반을 둔 한계가 드러난 글, 사람들에게 널리 공감 받지 못하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글, 대체로 내가 분석한 '덩치만 커진 글'의 문제점들이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고민도 필요했지만, 배움이 필요함을 느꼈다.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그들의 뒤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많이 쓰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글에는 과감한 가지치기가 필요함을 느꼈다. 분량을 채워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짧은 문장이 주는 기민한 호흡이 더 중요함을 알았다.
한 번에 많은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그 고치는 과정, 즉 퇴고는 더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더 줄이는 것임을 깨달았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경험하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 글쓰기 전문가들이 얘기했던 퇴고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하며 숨은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퇴고는 결국 나에 대한 가지 치기다. 일관성 없는 글의 흐름을 바로잡는 교정도 포함되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삭제하는 것이다.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인정사정없이 칼을 대야 한다. 자기 자식 같은 글도 날려버릴 용기가 필요하다.
고치는 과정의 최종 목적은 글의 다이어트다. 길어지는 문장을 짧게 끊고서도 호흡을 유지해야 한다. 짧은 글은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와 같다. 전체적인 글의 분량도 짧아야 한다. 물론, 짧게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 과정은 뼈를 깎는 인내를 요구한다. 한 번의 작업으로 원하는 결과를 거둘 수 없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당장 글을 보여주겠다는 욕심보다는, 조금 더 다듬고 바로잡아서 내가 의도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짧은 호흡을 유지하며 독자에게 집중력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그 능력이란 것은 수없이 많은 연습의 반복과 검증의 과정을 통해서 생산된다. 자 비대해진 글의 몸집을 좀 줄이자. 다이어트는 육체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에게 글쓰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