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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pr 03. 2017

당신을 보내고

아버지, 한 때 사랑했던

아득히 먼 곳으로 당신을 떠나보낸 후, 일상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정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닦아도 닦아도 다시 불쑥 솟아나는 눈물…… 무너진 상처 속으로 눈물이 빙그르 굴러떨어지자, 당신의 감각이 현실이 된다. 당신이 없는 아침은 환부를 도려내듯 아리고, 빛은 살아났으나 어두움에 힘을 잃는다. 창밖에는 통증이 가득한 하루가 떠오르고 나는 어둠 속에서 당신의 온기를 그린다. 당신이 없는 아침은 숨소리마저 잠재울 만큼 고요하다. 당신을 보내고 태연하다고 믿었던 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죽을 용기조차 없어서 이렇게 비겁한 아침을 다시 맞는다. 

당신에게 향했던 내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당신은 내게 무엇이었을까... 단 한 번이라도 당신에게 따뜻함을 보여주었던 적이 있었을까? 나는 무엇이 두려워 당당하지 못했으며, 냉정한 모습만을 보여주려 애썼을까. 나는 왜 당신을 계속 밀어냈을까... 왜 나는 진실 앞에서 비겁한 모습을 보였을까? 

겨울에 당신을 떠나보냈으나 봄이 찾아오면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망각의 도움을 좀 얻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당신과 나 사이를 끊었던 앙금이 조금은 풀릴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당신이 없는 아침은 삶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괴롭다. 그때는 왜 시간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을까? 당신이 던졌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반복되었던 불행이 당신 때문이라며, 정체된 삶이 당신에게 있다며 나는 얼마나 많은 심술을 부렸던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세상에 대한 불신을 가득 품은 하늘이 회색 공기를 잔뜩 머금었다. 구름은 거친 숨을 내쉬고 애먼 바람을 불러다가 습기를 쥐어짜댄다. 베란다 앞 휑하게 서 있는 세탁 건조대가 위태로워 보인다. 창 틈 사이로 수분을 잔뜩 빨아들인 눅눅한 바람이, 힘없이 널려있는 빨랫감에게 한숨을 토한다.


"당신을 잊겠다고 다짐했던 건 거짓이다..."


환한 불빛에 둘러싸여 태연히 숨 쉬고 있는 내 모습이 소름 끼친다. 불안하다. 집안의 모든 빛을 차단해야 한다. 빛이 어렴풋이 남아서 부끄러운 나의 민낯을 쪼아댄다. 커튼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막아선다. 어두컴컴한 침대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다. 스르르 눈을 감고, 사라지려는 당신의 촉감을 잠시 떠올린다. 손을 뻗으면 당신의 얼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허공에서 손이 떠오르다가 다시 부서져 내린다. 

당신의 구속에서 벗어난 것은 자유가 아니었다. 획일적인 틀이나마 보호받고 있다는 것이 행복한 일인지 이제는 안다. 정해진 법칙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당신이 없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이제는 안다. 

커피 한 잔을 겨우 내렸다. 잿빛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커피 잔을 무심히 바라보며 당신과 나누었던 지난 기억을 되살렸다. 당신을 떠나보내야 했던 수만 가지 허튼소리들을 늘어놓는다. 그것을 다시 들춰내고 합당한 이유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고통을 합리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들리지 않는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과 나에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당신은 흐린 잔상의 형태로 나에게 머물러 있다. 사라지려 하는 당신의 그림이 그립다. 

당신이 없는 그날이 더 이상 나에게 의미가 없음을 인식한다. 당신을 피하려 할수록 당신의 그림자는 더 선명해진다. 끝도 없이 무너지고 있는 나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하려 했으나, 입가에서 맴돌다 다시 사라진다. 나는 그렇게 부스스한 나날로 하루를 장식한다. 고통 속으로 자꾸만 복귀하려는 나에게, 속 시원하고도 분명한 대답을 듣고 싶다. 나의 본능은 당신의 기억 앞에서 허물어짐을 거듭한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키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낯선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발걸음은 무겁고 몸은 뒤로 처지려 한다. 오늘은 생각을 좀 바꿔보고 싶다. 이제는 고통에서 탈출하고 싶다. 따뜻한 햇살이 뒤에서 내 몸을 반긴다. 따뜻한 바람이 가슴을 데운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싶다. 마음에 가득 찼던 울분도 바람과 함께 가실 테지... 괴로운 나날도 아무렇지도 않게 바뀌어가겠지. 상처가 아물듯 고통도 시간과 함께 지워지겠지……

고개를 슬며시 들어 하늘에 미소를 날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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