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당을 보고
내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느끼고 싶다면
느리게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면 된다.
물론, 나보다 더 바쁜 사람이 많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지만……
내 삶이 포화에 휩싸인 전쟁터 같아서 도망치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는, 불발탄이 깊숙이 박힌 구덩이 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 그림이 내 것일지도 모른다.
부들부들 떨어가며 부디 폭탄이 터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렇게 사는 모습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북새통처럼 이어진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 일 없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이라 바라며
생각도 버리고, 열심히 달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거칠게 달려왔는데 꽉 쥐었던 손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뭐 불혹을 넘기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흔한 고민일까?
사춘기의 이유 없는 반항처럼 '사추기(四秋)'에 찾아오는 그런 방황일까?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한다.
직장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바삐 살 수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라고, 버리고 뛰쳐나왔더니 밖은 지옥이었다고 말이다.
호수 위에 떠있는 백조처럼 우아하기 위해서
이전보다 더 희생해야 하고 혼자 힘만으로 힘겹게 달려야 하는지 말이다.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린다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걸까.
아니면 지옥에서 다시 발버둥 치다 보면 전쟁터를 뛰어넘어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되찾을 수 있는 걸까.
내 삶에서는 느린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간접적으로나마 느린 것 - Slow Life - 같은 것에 흠뻑 젖고 싶었다.
<윤식당>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해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다.
인도 발리에서도 조금 떨어진 외딴섬에서 말이다.
약간은 서투르지만 그런 것조차 눈감아줄 수 있는
낭만적인 여행지에서 일주일 동안 한국의 음식을 판매한다.
때로는 한가롭고 때로는 분주한 그들의 삶이
나에겐 편안한 휴식이 된다.
내 마음은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여행자로 신분을 바꾼다.
<윤식당>은 마치 들떠있는 내 삶과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 보였으나 그들에겐 나에게 없는 자유가 있었다.
오르고 내림을 순환하는 내 삶과 닮았다고 정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국적인 섬의 풍경과 익숙한 한국 음식, 그리고 연예인
무언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에서 나오는 질서가
무너져내리는 내 마음을 정돈하고 바쁜 일상에서 한걸음 물러서도록 돕는다.
그렇다. 그들에겐 자유가 있다.
시간은 그들과 나에게 공평하지만
<윤식당>의 주인공들은 시간에 구속당하지 않는다.
끌려가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겐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 삶을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있어서 식당은 쌓인 피로를 푸는 과정이다.
마치 영화 <카모메 식당>과 콘셉트가 비슷하다고 할까?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잠시 규칙적인 것에서 물러설 수 있도록 한다.
눈부신 태양. 청록색의 바다. 얼음같이 차가운 맥주
그리고 통하지 않을 것 같은 한국적인 음식들……
스트레스를 잠시 접어두고 나도 식당에 동참한다.
오늘은 '불고기 라이스'에 나도 도전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