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다.
이른 아침, 강연을 위해 집을 나섰다.
원주로 향하는 발걸음은 예상보다 가벼웠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빨리 걷다가 조금 느리게 걷다가……
그렇게 잠시 순환을 거듭하다, 어느새 눈을
떠보니 원주였다.
원주는 강원도 인제에서 군 생활을 할 때, 훈련 때문에 잠시 방문한 이후 처음이었다. 아득히 추억으로 남아있는 예전 모습과는 많이 달라지긴 했다. 쉽게 그때의 기억이 회복되지 않는 걸 보니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나 보다.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마치 먼 여행을 떠나는 착각이 들었는데, 떠난다는 마음보다는 무엇을 찾아 나선다는 욕구가 앞서서였을까? 어떤 만남, 그리고 설렘에 기대가 컸다.
머릿속으로 미리 계산한 것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다. 뿌옇게 먼지가 가득 차 있었다. 이곳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버스 대합실로 허정허정 들어서는데 누군가의 엄마였을까? 정면으로 마주 오던 딸로 보이는 사람을 격하게 끌어안았다. "오랜만이야 너무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포근한 한마디가 내 엄마를 기억 속에서 끌어올렸다. 나는 뒷덜미를 쓰다듬다, 촉촉해지려는 눈가를 머쓱하게 비볐다.
나는 새로운 그리움을 찾아 나선 걸까. 아니면 새로운 순간을 마음에 담고 싶은 설렘 때문에 이 짧은 여행을 선택한 걸까. 오늘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나의 인생에 있어서 오늘의 순간은 어떤 모습으로 예쁘게 포장이 되어 또 한 편에 남게 될까. 긴장감보다는 설렘을 앞세우기로 했다. 준비한 것들을 모두 다 늘어놓겠다는 욕심보다, 내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말들을 반듯하게 정리해서 이야기 나누다 돌아온다,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카페에 들어갔고 빈자리에 잠시 앉아,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을 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앉아서 몇 시간 동안 내 눈에 스쳐갔던 장면을 펼쳐놓았다, 접었다, 했다.
영수증에 찍힌 5,500이라는 금액의 무게와 따뜻한 향이 나오는 헤이즐넛 아메리카노……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난 건 왜일까. 잠시 내가 Stupit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정도가 더 남겨놓았을 때, 나는 문화아카데미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리 리허설을 한 번 더 해보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방심은 금물이다. 연습을 실전처럼 무수히 반복할 때마다, 작은 실수조차 0에 수렴하도록 줄일 수 있다, 믿는다. 일요일 아침이라서 그랬을까, 센터는 생각보다 고요했다.
강의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하루를 복기하는 지금, "내가 꿈꾸는 미래에 조금 가까워진 걸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일요일 밤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경계 어딘가에서 잠시 작동을 멈춘다. 내가 쓰려고 했던 글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내가 하고 싶었던 진솔한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계획대로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붙들고 있는지, 그 정체를 다시 들여다보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강연의 본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강사가 보유한 지식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의 살아있는 경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솔하다는 것의 바탕은 강사가 실제로 경험한 이야기에서 나온다.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강사가 전하는 언어 속에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죽은 지식을 건조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닌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다, 아니 잘 하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나는 심장이 시키는 대로 그 뜨거운 열정을 지금까지도 꺼뜨리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주어진 타이머가 한 시간이라면, 아직도 나는 1분, 또는 1분 30초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
생각에 따라서 시간은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시간을 좀 더 길게 늘어뜨리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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