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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10. 2017

빚은 눈덩이처럼 몸집을 불린다.

미뤄두었던 것들...

'나중에 하겠다는' 말은 갚지 못하는 빚과 같다. 빚은 눈덩이처럼 몸집을 불린다. 미뤄 두었던 것들은 눌려있다가 폭발한다. 그것은 스스로 에너지를 결집시킨다. 응집되어있는 것이 고통의 씨앗이든 창조의 씨앗이든 터지게는 되어있다. 외부에서만 충격이 흡수되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 시작되어 서서히 진행되는 충격이 더 무섭다. 알면서도 마주할 자신이 없으니 모른척한다. 상처는 영역을 확장하여 주변의 멀쩡한 조직까지 넘본다.

나는 그 고통의 깊이를 알고 싶지 않다. 별거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데, 크게 터지고 나서야 수습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지출한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리고 또 망각한다. "이런 멍청한 인간……"



얼마 전 사건은 터졌다. 몇 주전부터 위쪽 어금니가 불편했다. 뭐 통증이 있긴 했지만 참을만했다. 참을만하다는 건 치과 가는 것이 두렵다는 말이 맞다. "그래. 맞아요. 저 겁 많은 남자예요. 변명, 인정합니다." 그날의 잇몸 치료가 떠올랐다. 그런 걸 악몽이라고 하는 거다.


뻐근한 주삿바늘

잇몸을 들쑤시는 스케일링 기구의 굉음

약품이 풍기는 괴상한 냄새

뼈를 깎아내는 소리

누웠지만 이상하게 편안하지 않은 침대

찢긴 잇몸과 그 사이로 흐르는 핏물

고통을 참다 들어올려지는 나의 오른팔

나의 생살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보철재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잇몸과 도미노처럼 축 늘어진 이빨들……

휘청거리는 몸짓……


크라운 - 금니 - 하나를 씌우기 위해 몇 달이 소요됐다. 치과를 안방 드나들듯 하면 공포감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공포는 치과에 드나드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비례했다. 모든 고통의 시작은 "나중에 하자"라는 변명이었다. 위중한 것을 별거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순간 공포는 싹을 틔웠다. 냄비 위에서 서서히 데워지는 개구리의 운명처럼, 그것은 내 살을 갉아먹었다.



잇몸 치료가 무엇인지 궁금한가? 그것은 스케일링의 또 다른 변종이다. 염증이 발생한 부위를 들춰내고 솎아 낸다고 할까. 보이지 않는 잇몸 속의 치석을 긁어내는 것이 잇몸 치료의 정수라 정의할 수 있겠다. 나는 치과의사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명확히 기억한다. 차가운 기구가 내 잇몸을 헤집고 다녔다는 것이다. 염증이 있는 핏줄을 누비고 다니며 신경을 죽였겠지. 그래 그날 나의 20%가 죽었다. 죽을 것 같은 치통이 내 일부를 녹였을거다.

고통은 다시 찾아왔다. 오징어 한 마리가 사건의 발단이 됐다. 질겅질겅 씹어먹은 그 씹어먹을 연체동물이 문제였다. 다음 날 미칠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씹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내가 구워놓은 삼겹살을 말없이 쳐다봤다. "침만 질질 흘리면서……" 약을 먹기로 했다. 그래 '인'이라고 시작하는 유명한 잇몸약이 있지 않은가. 무릎을 탁 쳤다. 3천 원이면 내 손에 10캡슐이 떨어졌다. "그래 그걸로 버텨보자. 괜찮아질 거야." 주문을 외웠다. 참으면 끝날 줄 알았다.



아내는 근심에 싸인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아침에 먹는 사과가 강판에 갈렸다. 점심은 다이어트라는 핑계로 두유 하나로 때웠다. 저녁은 라면이 부드럽다고 좋다고 했다. 살이 자동으로 빠졌다. 나는 얼굴이 근사해졌다고 반겼지만, 아내의 눈길은 더 걱정에 쌓였다. 김치는 잘게 썰려서 현미 죽의 친구로 등장했다. 아내의 작전은 차분하게 이어졌다.

아내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버틸 재간은 없었다. 나는 통증에 항복하고 말았다. 구글링을 시작했다. 정보를 수집했고, 이번에야말로 긴 싸움이 찾아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자책했다. 미리 챙겼을걸, 나는 또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인간이 되었다. 과거 다 나았다고 딱딱한 누룽지를 씹어대며 새 이빨을 테스트한다던 내가 보였다. 왜 나는 과거를 쉽게 잊어버릴까. 그렇게 고통에 치를 떨었으면서도 과거의 모순을 반복할까. 그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치과의 문턱을 겨우 넘어선 나는 몸을 의사에게 맡겼다. 온순한 양이 되었다. 견적서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숫자의 단위가 한 칸이 더 늘어났다. 미뤄둔 내 탓이다. 누굴 탓하겠는가. 이번에는 내년 여름까지 싸워야 한단다. 자랑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CT 촬영 비용을 공짜로 해줬다며 아내에게 영수증을 쓱 내밀었다가 등짝에 스매싱을 당할 것 같았다.

아내는 걱정을 했다. 벌써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냐며 눈물까지 글썽글썽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철없는 아이처럼 웃었다. 나는 세월이 흐른 증거라 생각하자고 그냥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아내는 내가 느낀 고통보다 수십 배의 고초를 겪은 사람처럼 수척해졌다. 내 몸에서 무언가 하나씩 사라진다는 것이 꽤 슬펐던 모양이었다.



앞으로 몸은 더 망가질지 모른다. 아니 망가질 것이다. 그것은 인생이 흘렀다는 증명이 된다. 관리의 필요성은 증가한다. 내면에 집착하려던 나에게 경종을 울린 것일까. 몸을 좀 돌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치과 예약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치과입니다.
이석현님의 예약은 11월 **일 오후 5시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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