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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23. 2017

아날로그가 전하는 감성

회사 송년회 참석

회사 주최로 송년회 행사를 진행했다. 12월이 되면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뮤지컬을 보는 행사를 갖곤 했다. 올해는 코엑스 근처의 고급스러운 뷔페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라이어'라는 연극을 보기로 했다.

나는 경악스럽게도 연극을 단 한 번도 보러 간 적이 없다. 극장에는 그럭저럭 다니긴 했지만, 우연스럽게도 연극 볼 기회는 없었고 연극 자체도 나에겐 별로였다. 뭐 그렇다고 극장에서 영화를 자주 챙겨 보는 편도 아니었다. 집에 홈시어터를 꾸며놓고 나서는 극장도 웬만하면 찾게 되지 않았으니깐. 아내와 내 취미가 유별났던 것일까, 둘 다 집에서 노는 게 좋아서 그랬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우연이 계속 겹쳐서 안 보고 살았던 걸까. 



개인적으로는 연극 무대에서 쓰는 장치의 한계성과 공간적 제약성 때문이라 해석한다. 나는 특수효과 위주의 공상과학 영화를 선호하는 편인데, 디지털과 현란한 그래픽 효과로 덧칠한 영화에 오래도록 길들여져 왔다. 연극과 같은 현장의 감성은 나에게 신선함을 줄 수 없거나 내 상상력을 초월할 수 없다며 일부러 멀리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아날로그 감성을 중요시하며 감수성이 짙은 글을 쓰겠다는 글쟁이가, 현실은 점점 디지털이 주는 충격적인 경험을 더 찾고 있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먹고사는 직업이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에 훨씬 가까운 이유도 아날로그 감성을 등한시하는 문화에 한몫을 차지한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 보면 유행하는 트렌드 기술에 민감하게 된다. 매일 진보하는 기술에 기민하게 대응하려면 내 몸의 모든 감각기관이 열려있어야 하는데 때론 세포가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도구는 디지털의 옷을 입고 있다. 심지어 글을 쓰고 있는 외적인 환경조차 아날로그가 아니다. 지금 쓰고 있는 에디터조차 '구글 킵'이란 클라우드 노트 어플을 쓰고 있다. 


나는 감성적인 생각들을 디지털이라는 공간에 유배시키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를 꿈꾸며 사는 내가 가끔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나는 생각을 하고 네트워크를 통하여 그것을 옮기고 안전하게 보관이 잘 되고 있는지 근심하지만, 구글은 절대 망할 기업이 아니니 내 글은 안전할 것이라 안심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가 전하는 고유의 편안함이 있다. 나는 그것을 찾아 디지털의 세상은 아날로그의 느낌을 포장하기도 하는데, 'Google Keep(구글 킵)'이나 '브런치'와 같은 에디팅 시스템은 내면의 복잡한 체계를 사용자에게 보여주지 않음으로 인하여 아날로그 감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미묘한 경험을 제공한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날로그 감성이다'라는 이야기다. 나는 연극을 보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있으니 내가 살아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객석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고 무대가 시작되려는지 불이 꺼졌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으나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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