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시

심지아 시인의 이상한 활주로 패러디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심지아 시인의 "이상한 활주로"를 읽고

영감을 받아 몇 자 적어봅니다. 먼저 원본입니다.


이상한 활주로 / 심지아


나는 토성의 고리, 여섯 번의 비명을 지르는

나는 멀리 던진 부메랑, 새들의 이마에 부딪히며 안녕

나는 때로 읽히는 책, 꿈의 허리를 쓰다듬는

나는 귓속에 펼쳐진 지도, 낯선 음표들의 동굴

나는 분홍 뺨, 거짓말들의 사탕봉투

나는 한밤의 괘종시계, 불면을 배달하는

나는 해질녘의 그림자, 긴 목으로 인사하는

나는 토끼, 앞니로 뜀박질하는

나는 빨래집개, 햇살의 부푼 배를 깨무는

나는 불협화음, 아픈 아가를 위한 자장가

나는 계단, 오직 뛰어내리기 위해 오르는

나는 여름, 우산과 장화의 날들

나는 바람개비, 은밀하게 미친

나는 타이밍, 어긋나기 위해 태어난

나는 창문, 노크는 금물

나는 마법사, 검은 모자에 손을 넣는 순간을 사랑하는


1a9f0dfe8d8c4918e26d7b2426c934ac.jpg



난해한 시


나는 마지막 열차, 달려도 당신에게 닿을 수 없는
나는 지난 햇살, 오지 않는 그리움만 먹고사는
나는 일요일의 아침, 월요일을 잊고 싶어 하는
나는 검은 연탄, 아직 뜨겁지만 찾는 이 없는


나는 미세먼지를 품은 하늘, 더러운 세상을 정화했지만 곧 이별해야 하는

나는 겨울바람, 당신의 가슴속에선 살 수 없는
나는 나비, 고작 하는 짓이라곤 날갯짓만 하는
나는 낡은 피아노, 당신의 음계를 따라 춤추다 버려지는


나는 산소, 당신의 입술에 입 맞추다 사라져야 하는
나는 민들레 홀씨, 후 불면 연기처럼 흩어지는

나는 모래알 속에서 피어난 새싹, 찾을 수 없는 희망만 꿈꾸는
나는 무명 시인이 쓴 시집, 찾을 수도 없고 읽어주는 이도 없는


나는 접착제, 당신에게 척 달라붙었다 지쳐 떨어지고 마는
나는 지난밤의 촛불, 뜨겁다 망각의 병만 얻은
나는 눈물, 메말라 흐를 수 없는 계곡 같은
나는 미운 아버지, 미안하다 말할 수 없는


나는 낯선 여행지, 돌아오지 않는 당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나는 이빨 빠진 접시, 당신과 한 철 깊은 사랑에 빠졌던
나는 결혼반지, 당신의 설렘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나는 실패한 다이어트, 잊기 위해 무엇이든 먹어치워야 하는


나는 40대의 직장인, 내지 못하는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나는 수상(受賞) 한 사람, 달라진 건 없고 잊혀만 가는

나는 소금기 잃은 바다, 밋밋해서 죽어가고 있는
나는 구름 뒤 가려진 슬픔, 억지로 즐거운 척 그렇게 살아야 하는


나는 뷔페 요리, 한없이 많은데 막상 먹을 건 없는
나는 가면 뒤에 숨은 비겁자, 진실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나는 눈사람, 녹아 흐를지라도 당신만 바라보는
나는 달의 뒷면, 영원히 당신을 만날 수 없는


나는 말, 당신을 볼 수 없어도 찾아갈 수는 있는

나는 난해한 시, 당신과 가까울 수 없는




브런치 : https://brunch.co.kr/@futurewave
블로그 : http://blog.naver.com/futurewave01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