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질문의 책과 나의 대답
'파블로 네루다'라는 칠레 시인의 '질문의 책' 을 읽고
질문 중의 하나를 소설 형식으로 써봤습니다.
나는 오늘 죽었다. 호흡이 멈춘 걸 보니, 아니 눈을 뜰 수 없으니 그럴 것이다. 죽음 이후의 상황은 암흑천지일 것이라 예측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답답할까. 그것도 어쩌면 모를 것이다. 숨을 쉬지 못하니 아마도 그렇겠지. 예상보다 답답하지는 않은데, 하나둘씩 사라지는 기분이 좀 쓸쓸하다. 의식은 적어도 이 시간까지는 살아있다. 이상한 것은 죽음 직전의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내 옆에는 사망진단서 같은 게 놓여있을 것이다. 나는 지구상에서의 내 이름, 존재를 잃은 셈이다.
눈을 뜨고 싶어도 근육이 죽은 탓에 뜰 수도 없고 만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든 감각기관이 얼어붙는다. 점점 추워진다.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으니 춥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은 아직까지 하고 있다. 감각은 마비되어가고 있고 기민했던 세포들의 활동이 점점 둔해지고 있다. 깊은 잠에 빠져가고 있어서 그럴까? 몸이 싸늘하게 식어간다는 것, 피부가 썩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별다른 통증 같은 감각은 없다. 나는 나의 육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어떻게 되는 걸까. 호흡은 멎었어도 마음은 아직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데, 의식이라는 것은 내 몸 안에 머물러있다 먼 곳으로 떠나려나 보다. 나는 그것이 두렵다. 시계는 볼 수도 없고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파악도 불가능하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아마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던 아내, 내 자식들, 내 이웃들, 내 친구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내 옆에서 흰 가운이 덮이는 걸 기다렸을 것이고 내 육신이 냉동고에 실려 가는 걸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지금 겪는 죽음은 지금 몇 번째일까. 나는 오만 번 정도 죽고 다시 태어났을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죽음이 처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불행한 일이 아닌가. 내가 벌여 놓은 미완성의 세계를 다시 회복할 기회가 없다는 얘기 아닌가. 이제 완벽한 암흑이 찾아오고 있다. 내 옆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을까? 잠들 때마다 보던 암흑과는 차원이 다른 검은색이다. 원하면 다시 볼 수 있던 그 빛은 이제 없다.
나는 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나를 창조한 것은 어떤 큰 뜻이 있었던가. 시스템의 작동하다 남긴 오류는 아니었나. 우연이 겹치고 그것이 혼돈을 낳아 그 무질서가 생산해낸 결과물은 아닌가. 나의 존재는 결국 증명을 하지 못하고 숙제로 남겨진다. 그 숙제는 누가 풀어야 할까.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숙제가 또 남겨지는구나. 아니 영원히 삭제된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 순간 하필 내 기억에서 끌어 올려진 것이 그뿐이라니, 내 정신 상태가 우습다. 아마도 그 당시의 충격이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혼란에 빠진 생각에서 굴러떨어진 모양이다. 외계인에 의하여 내가 창조된 생명체라면 죽음 이후의 세계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창조하고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는 그들이 프로그램한 수백수천억 번째의 실험 대상체일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나의 삶을 어딘가 기록했을 것이다. 아니다. 평범한 내 삶을 기록했을 이유가 없다. 만약, 그들이 나를 기록했다면 그곳에는 내가 어떻게 살았다고 회자되고 있을까. 예측대로 나는 살아갔을까.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은 있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나는 폐기 취급될 살덩어리 중 하나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나는 연소되지 않은 블량품일지도 모른다.
나는 분해되어 어떤 물질이 되어 소멸할까.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보존된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우주의 일원으로 다시 돌아간다. 내가 우주고 우주가 또 내가 되는 것이다. 확실치는 않은데, 그렇게 되는 것이 무한한 우주를 위하여 좋을 것 같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을 믿었던 어리석은 시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세월에서 신은 멀리 있었다. 죽음 이후에, 우주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는 없었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 문제는 굳이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교인들이 정의하는 범주에는 나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중죄인이 아닌가. 그들의 논리에 따른다면 나는 응당 지옥행 고속 열차를 타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않고 살았다. 조금 이기적이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했다. 나같이 어정쩡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도 기회는 주어져야 맞는 게 아닌가. 단지 믿음이 없다 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라면 조금 억울할 것 같다. 무의 세계로 돌아가지도 못한 아직까지도 선택과 결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끝까지 모순이다. 나는 뭐 그래도 괜찮다. 나는 그걸 오래전부터 그것까지 계획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결정한 문젠데 누굴 원망하겠나. 설사 신이 존재하여 나에게 심판을 내린다고 한다면, 그 이유가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이고 그 때문에 나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그 신은 내가 보고 싶거나 믿어야 할 신은 아닐 것이다.
잠이 쏟아진다. 이 잠에 빠지면 영원히 깨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이 냉정하지만 맞을 것이다. 답답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홀가분하다. 다만 아직 심장 부근이 아릿하게 무거운 것은 떠오르는 사람들 때문이다. 내가 사랑했으나 먼저 떠난 사람들, 그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중간계가 존재한다면 좋겠다. 내가 먼저 떠나더라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사랑했던 사람을 한번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그 사람을 기억 못하더라도, 그때는 조금 여유롭게 요단강을 바라보며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거나 또 강을 건너가볼 수 있을까. 졸립다.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잠에서 깼는데 골치가 지근지근 아프다. 도대체 얼마나 잔 것일까. 너무 피곤해서 잠든 기억만 난다. 요즘 피곤이 겹치긴 했지. 좀 쉬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 사무실이 조용하다. 모두 퇴근한 모양이다. 텅 빈 사무실에 내 자리에만 불이 켜져 있다.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직 퇴근 안 했어? 시간이 꽤 늦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몇 개의 확인하지 않은 숫자 "1"이 보인다.
"어. 저녁 먹고 잠깐 잠들었는데. 지금 일어났네. 정리하고 빨리 갈게. 근데 나 이상한 꿈꿨어. 꿈에서 내가 죽은 거 있지? 너무 생생해서 정말로 내가 죽은 줄 알았다니깐.",
"그래? 별 이상한 꿈을 다 꿨네. 당신 요즘 피곤하니깐 꿈도 이상한 걸 꾸는 것 같아. 피곤한데 빨리 와서 쉬어. 내가 계란 말이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된장국 끓여놓고 있을게. 추우니깐 택시 타고 와. 보고 싶어..."
"그래 알았어. 사무실 정리하고 얼른 갈게"
"메모리 다 지웠나?"
"네 지금 지우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기억 용량이 꽤 됩니다. 그리고 몇 가지는 잘 지워지지 않아서 힘이 좀 드네요"
"그래? 잠깐 봅시다. 아... 그럴 때는 그냥 시스템 포맷을 해서 완벽하게 지우면 되지. 괜히 기억 잘못 남겨두면 저 사람의 다음 생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니깐. 완벽하게 없애주는 거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과거 생에 대해서 어떤 여지를 남겨두는 게 저 사람에게 괴로움을 줄 수도 있는 문제거든. 깔끔하게 처리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남은 일은 제가 마무리할 테니 돌아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알았어. 처리 잘하고 오도록. 지난번처럼 불행한 사건이 터지도록 하면 안 돼. 알았지? 그렇게 되면 위에서 큰 문제를 삼을지도 몰라, 우리는 그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명심해"
"네"
그는 모니터링을 하다 시스템 포맷까지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았다. 모두 지워도 한 장면 정도는 남겨두는 것이, 이 사람이 다음 생을 살아갈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메모리를 꺼내 포장을 하고 다음 팀에게 작업을 넘겼다. 그때, 메일 한 통이 관제실에서 도착했다. 다음부터는 메모리를 보내지 말고 저장된 내용을 바로 서버에 업로드하라는 것과 메모리는 폐기처분하라는 내용이었다. 저장공간을 서버에서 관리하겠다는 관제실 총책임자의 뜻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왠지 이 기억은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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