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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an 14. 2018

노인

화전민, 사무곡의 겨울

노인은 철 지난 작업복을 걸치고
말라붙은 산비탈, 흙더미에서 
묻힌 삶의 이야기를 거두고 있다

얼어붙은 손마디를 매만지다
곶감을 주렁주렁 꿰어

오를 수 없는 하늘 위로 
한 줄 겨우 올려다 놓으니 
날아가던 까마귀가 바람을 얹어 놓았다

차가운 겨울은 말이 없어도
몇 백 년 동안 살아있는 노인을 살폈고 
낮과 밤이 잠겨있는 빈 초가집
어두운 아궁이 앞에 고개를 숙인 노인은
아버지, 누이를 생각하며 불을 지폈다

노인은 처자식을 떠나보내다 산속에 혼자 늙었고
세상에 없는 밥 한 그릇을 지어먹었다
고등어 한 마디, 소주 한 잔이 
옆에서 슬픈 말을 했다

호롱 불이 차츰 빛을 잃어 숨을 죽일 때
노인의 긴 적막이 
고요한 산속에서 메아리를 쳤고 
먼 구름이 되어 흘러갔다

노인은 지나간 이야기에 취하다
홀로 잠이 들었다
산은 옆에서 가만히 있었다




사진 출처 : KBS


KBS 다큐 공감 <<마지막 화전민, 사무곡의 겨울>을 보고 감동받아 시를 지어봤습니다. TV가 있어도 틀지 않는 편인데, 어제는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할아버지의 오래된 삶에 귀를 기울였고 잠시 일상을 엿봤습니다. 할아버지의 긴 적막을 보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빈 산속에서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계실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자동으로 따라가면 되는 삶을 살고 있는 나, 시끌벅적 떠들며 외롭지 않다고 우기며 살고 있는 나, 배부르고 등 따스한 밤을 보내고 있는 나는 새삼스러운 하루가 감사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에는 관심을 좀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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