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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an 14. 2018

눈이 오는 밤

언젠가 갚겠다 약속했던 날

그날도 그러했다
내 방안에 수증기가 자욱이 퍼져
공기를 산란시키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몸으로 물기를 빨아들였다
한참을 그러다가 다시 짜내기를 반복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 머리는 하얗게 탈색되곤 했다

나는 이생에 빚을 진 인생이었다
언젠가 갚겠다 약속했던 날은
야상곡처럼 쌓이는 밤의 눈동자속에 홀로 저물어갔다

창밖에는 밤에만 물건을 파는 장사가
싸늘히 식은 돌담 위에 앉아
팔지 못해 식은 대구의 개수를 세었다

장사치의 눈물은 얼음처럼
계단 위를 흐르다 눈밭에 하염없이 쌓였다
빗자루로 쓸어도 담을 수 없는
눈물은 싸늘하게 몸을 식었다

새날이 시작되고

헛기침을 하는 아침을 보며
오늘은 밤에 떴던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기대를 외투에서 툭툭 털어내었다




눈이 올 때 나는 창밖을 본다. 먼 산을 찾아 시선을 떠나보낸다. 내리는 눈꽃을 벗 삼아 멀리멀리 함께 보낸다. 그렇게 하면 내 육신에 남아있던 찌꺼기가 배출되는 느낌이 찾아온다. 마음이 아침까지 살아남아서 새로운 계획을 오늘 밤에서부터 다른 날까지 계속 이어붙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온다.

그러나, 오늘밤은 소식이 없다. 기다리던 바람도 눈도 당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다린다. 매일 밤마다, 정해진 시간마다 묵묵히 때를 기다린다. 뜬 눈으로 밤을 샌다.

눈을 감는다. 아침이 온다. 당신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에 나는 바쁘다. 창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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