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다

당신이 잘 흘러가게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자정이 지나면

나는 어두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좋지 않은 날로부터 조금 떨어지는 의식을 찾는다


마지막 영화 티켓 한 장이

쪽방 같은 서랍 한구석에 널브러져 있다

모자란 기억력을 거두어도

당신과의 약속은 과거로 영영 박제된다


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차마 말할 수 없는 폐병에 걸렸다

기침을 해도 눈물과 헐어버린 약속만 튀어나오는

오래되어 단단하게 응어리가 된 산송장을 본다


허리에서 가슴으로 죽은 세포는 번져가

살아남은 자의 노래를 거두려 한다


가슴께 흐르는 묵은 통증을 찾아서

어느 순간의 나에게 동정을 하거나

말문이 막힌 옛 약속을 어루만진다


잊을 건 모두 잊어버리자

당신과의 첫사랑도 미워했던 모든 나쁜 밤들도

세월의 강, 자갈이 잠든 아랫목 어딘가에 누워

당신의 옛 노래를 내 것이 아닌 노래로 불러야 한다

그리하여 목놓아 당신을 실컷 불러 보다

당신의 음계가 강물위에서 흐를 때

그때 당신의 이름을 천천히 놓아 주자

당신이 잘 흘러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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