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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21. 2018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군대에서 전방 오지의 상황병으로 근무했다. 상황병이 주로 하는 일은 내무반에 설비된 작은 공간에 앉아서 통신 장비를 다루거나 상황 일지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물론 병사들의 근무시간을 확인하는 것과, 철책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기록하고, 탄약과 무기 상태를 체크하는 일도 병행했다. 때로는 PX 병 노릇까지…… 근무는 두 명 단위로 이루어졌다. 사수와 부사수, 처음 전방에 투입되었을 때, 부사수였고 두 번째 투입되었을 때는 사수였다. 영하 30도 이하의 추위를 피해 내무반에 근무한다는 거 자체가 사실 복이었다. 다른 병사들은 그 부분에 대하여 불만이 컸다. 자신은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매일 1,000계단을 오르고 내리는데, 우리는 책상에 앉아서 펜대를 굴리거나 통신 암구호 같은 소리나 중얼거린다는 이유였다. 

  그들의 볼멘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 나는 가끔 소초 근무에 투입되었다. 물론 자발적으로 말이다. 병사들이 근무하는 환경을 경험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고, 그들과 함께 신체적인 고통을 나누는 행위로 연대감을 느끼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여름이면 전방 철책 너머에서 온갖 소리가 들려온다. 북한군 병사가 정말 귀순이라도 하는 것처럼 풀잎을 무릎으로 스치는 소리가 매일 들렸다. 소초에 앉아서 통신 장비에서 들리는 소리로 전방 너머를 가늠해보는 것은, 정말 책상에 앉아서 펜대 굴리는 행위나 다를 바가 없다. 더위와 추위 두 가지가 병사들의 가장 큰 고통이었다. 물론 졸음도 한몫을 차지했지만…… 아무리 두 눈을 부릅뜨고 철책 너머를 사수한다 하여도 눈앞 1미터 넘어조차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엇을 대비할 수 있으랴. 고참이 된 후에도 나는 스키복, 장화, 두꺼운 장갑 몇 켤레, 스키 모자, 안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를 근무에 스스로 투입시켰다.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내무반에서 상황일지 따위나 기록하며 목숨을 버릴 것이 아니라, 근무지 초소에서 적지에 총이라도 겨눈 채로 죽는 것이 명예라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오늘은 조지 오웰의 자전적 이야기, <카탈로니아 찬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전방에서 근무했던 이야기를 먼저 언급한 것은 오웰이 작가의 신분이 아닌, 군인의 신분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것과의 연관성을 찾고자 한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중에서 처음 접했던 작품은<동물 농장>이었다. 중학교 영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내준 숙제, 즉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였다. 영문으로 쓰인 소설이었는데, 분량이 비교적 짧아서 쉽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소설 외에 다른 형태로도 많이 접했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으면서 조지 오웰의 '글을 쓰는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그 내용은 유시민 작가의 어느 책이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조지 오웰'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1.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2.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열정
3.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충동
4. 정치적인 목적
-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 중에서...

 

 글이란 무엇일까?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흔히 말하는 현실에 대한 도피처였을까? 내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지적 욕망이었을까? 죽어서라도 후대에 내 이름을 알리고 싶은 역사적인 뜻이 있었을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분명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글을 써야 한다는 목적의식보다 글을 왜 안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에게 더 합당하다. 왜 글을 쓰지 말아야 하는지, 그 문제가 나에게 무용하기 때문이다. 글은 생각보다 우리와 가까이 있다.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서 학교, 직장, 때로는 무덤에까지 묘비명으로 글은 우리를 따라다닌다. 나는 단지 그 숙명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뿐이다.

  다시 화제를 돌려 조지 오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의 글 쓰는 목적과 내가 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나는 글을 쓴다고 이야기했다. 내 이웃 블로거님의 추천을 따라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었다. 꽤 딱딱하고 냉소적인 이야기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소설이라기보다 조지 오웰의 삶을 담고 있는 전기로 봐야 한다.


"나는 신문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에 갔다. 하지만 가자마자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위와 같이 말한다. 스페인의 내전 상황을 보도하기 위해 스페인, 카탈로니아에 방문한 것이다. 글이란 것은 경험 없이는 쓰기 어렵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여 논문의 내용을 안방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여도, 현장에서 느끼는 것과 자료 조사에서 얻는 간접적인 경험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을 기록하려던 그는 의용군에 입대한다. 단지 그것이 글 쓰는 행위보다 더 가치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조지 오웰은 공산주의자였다. 사람을 계급에 따라 서열을 짓는 것보다 모두가 균등하게 나누는 공산주의의 가치에 희망을 둔 사람이었다. 그는 스페인 노동자 들의 자유로운 생각, 만인이 평등하다는 주장에 감명을 받는다. 그들의 이상을 지켜주고 싶었기에 기꺼이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선택한다. 카탈로니아에서 벌어진 싸움은 자유와 평등 몇 가지만으로도 그가 참전할 만한 이유가 되었다.

<카탈로니아 찬가>을 읽으려면 사실 스페인 내전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책 말미에 내전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간단히 소개해본다.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네 가지 목적 중에서 정치적인 목적을 강조한다. 오웰이 이 책을 쓴 이유는 사실 분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졌던 혁명의 맛, 자신이 직접 전쟁에 참전하며 느꼈던 분노의 감정, 스페인 정부에서 상황을 왜곡시켰던 진실을 외부에 알리기 위하여 이 책을 쓴 것이다. 바로 그것이 그의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자는 스페인 내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스페인이 처음 공화국을 선포한 것은 1873년이다. 그 후, 대통령이 바뀌는 혼란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는 일이 벌어졌다. 19세기에 접어들며 스페인은 다른 제국주의 세력에게 밀렸으며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며 쿠바와 필리핀을 상실했다. 하지만 군부세력은 힘을 잃지 않았으며 이에 저항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은 바르셀로나를 기점으로 하여 혁명을 일으켰다. 특히 카탈로니아는 스페인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강했다. 그렇게 결성된 혁명위원회는 공화국을 성립했으나 보수세력의 반격으로 정권이 물러나기도 하고 보수 세력에 대항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카탈로니아의 국가 선포였다. 

  가까스로 공화파, 공화 좌파, 사회당, 공산당으로 이루어진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독재자 프랑코가 파시스트 반란을 일으켰다. 프랑코는 쿠데타가 성공할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노동자 계급은 군부를 막아내어 승리할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스페인 내전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파시스트 프랑코를 지원했고, 이는 오웰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전쟁에 참전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힘이 없던 정부는 노동자 계급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다, 필요가 없어지자 희생을 왜곡시킨다. 그리고 소련의 지원받아 노동 계급을 분산시킨다. 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웰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고한 사람들이 그릇되게 비난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는 것이며, 
그 '무고한 사람들'이 '트로츠키파'라는 것 - 이 자체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는 것이 오웰이 얼마나 '정치적'이지 않은지를 보여주는데 - 
은 부차적인 문제다."

 

  오웰은 노동자들이 주축으로 하는 혁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었다. 그들에게는 계급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가 동료였으니 과거의 신분과 성별은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혁명을 통하여 과거의 억압받던 역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꿈을 꿨다.


"무엇보다도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갑자기 평등과 자유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고 노력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현실은 암담했다. 그들에게는 제대로 지급된 총과 수류탄조차 없었다. 사실 그들은 맨몸으로 전쟁에 뛰어들어 파시스트와 싸우는 현실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들은 순수했다. 단지 전쟁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낸다는 사실에 웃었고 암울한 상황하에서도 서로를 격려했다. 그러한 이야기가 오웰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마음만 뜨거운 이 어린 무리는 며칠 후면 전선으로 내던져질 것임에도, 
소총을 쏘거나 수류탄의 핀을 뽑는 방법조차 아직 배우지 못했다. 무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

  

  조지 오웰을 비롯한 외국의 참전 군인들은 그런 스페인 사람을 사랑한다.


"의용군에서 복무하는 외국인들은 모두 첫 몇 주 동안 스페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동시에 그들의 어떤 특징들에 화를 내게 된다. 전선에서 나의 분노는 가끔 격분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어떤 외국인이든 반드시 배우게 되는 단어가 마냐나 - 내일(문자 그래도른 아침) - 이다. 그들은 가능하다고만 생각하면, 오늘 할 일을 마냐나로 미룬다. 이것은 워낙 악명 높은 악습이라서 심지어 스페인 사람들끼리도 그것을 놓고 농담을 한다."


  하지만 전쟁은 그 자체로 참상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싸우는 일이 더 끔찍한 것이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아르덴 공세, 또는 바스토뉴 공방전 에피소드에서는 적과의 교전으로 사망하는 병사보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동사하거나 아사하는 병사가 더 많았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추위와 공포로 내내 시달렸다. 참호 속의 추위, 소름 끼치는 새벽의 경계근무, 
얼어붙은 소총을 들고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하는 보초근무, 
군화를 덮는 차가운 진흙 등을 생각하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오웰을 비롯한 의용군들은 파시즘과 싸우기 위하여 참전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이 어떤 종류인지 몰랐다. 그들이 정치적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조차 말이다. 자신의 싸움이 혁명적인 순수함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치부되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은 혁명적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장군과 사병, 농민과 의용군은 여전히 평등한 자격으로 만났다. 모두가 똑같은 보수를 받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서로를 '당신'이나 '동지'라고 불렀다. 고용주 계급도 없었고, 하인 계급도 없었고, 거지도 없었고, 창녀도 없었고, 변호사도 없었고, 사제도 없었고, 아첨도 없었고, 모자에 손을 대는 인사도 없었다."


  그는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의용군에 입대했지만, 적군을 만나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일반 사람들은 전쟁의 의미를 잃었다. 또한 매체들은 공정성을 잃고 노동자에 불리한, 정부에 유리한 시각으로 상황을 왜곡시켰다. 


"공산주의 매체의 보도들을 읽어가다 보면 그들이 사실에 무지한 대중을 의식적으로 겨냥하고 있으며, 편견을 심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부는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노동자계급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통일노동자당을 비롯한 노동자 정당을 불법화시키고 노동자들을 구금한다. 전쟁에 참전했던 외국인들까지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아이, 부인, 부상자까지 포함하여 말이다. 조지 오웰의 말처럼 모든 전쟁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본래의 의미를 잃는다. 점차 타락해가는 것이다. 스페인 내전은 본연의 순수함을 잃고 한쪽의 이익을 실현할 목적으로 반대파를 숙청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 와중에 그는 목 부근에 관통상을 입는다. 세상에 총알이 목을 관통하고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는 부상을 입었지만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폭발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다. 크게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빛이 번쩍거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통증은 없었다. 아주 격렬한 충격만 느꼈을 뿐이다. 전극에 몸이 닿았을 때의 느낌과 동시에 완전한 무력감을 느꼈다. 짓눌리고 움츠러들어 무로 변해버리는 느낌이었다."
"이런 참사 - 어떻게 끝이 나건 스페인 전쟁은 살육과 신체적 고통은 별도로 하거라도 경악할 만한 참사였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 를 잠깐 보았다고 해서 꼭 환멸과 냉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경험 전체를 통해 인간의 품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다."


  그가 전쟁에 참전한 이후 스페인의 상황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혁명의 이유를 잃고 사람들은 정당으로 갈려 서로의 목적한 바를 이루려고만 했다. 전쟁은 역시 어떤 이익을 수반한다는 것을 그도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참전하여 만났던 사람들을 기리기 위하여, 그 상황에서 목숨을 던졌던 동료, 전우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그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다.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찬가다. 반대 정당이라는 이유로 투옥되고 전사하고 불구가 된 사람들, 그들에게 안식이 있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 기록된 것이다. 

  그는 그와 함께 했던 트로츠키파를 변호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 오웰로서는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의 억울함이 없었다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의하여 나는 스페인의 상황을 얼핏 이해하게 되었고, 노동자들의 피의 투쟁의 역사를 바로 보게 되었다. 물론 반대파의 의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하게 쓰기 위하여 노력한 그의 흔적, 그가 실제 경험한 이야기들을 통하여 나는 그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글이란 것은 조지 오웰처럼 책상에 앉아서 펜으로 춤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때로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며 포화속으로 뛰어드는 용기, 비겁함보다는 무모한 도전이 더 의미 있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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