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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21. 2018

중국 청도 출장 - 2

  칭다오(청도) 출장 둘째 날이다. 출장은 몸에 그다지 이로운 행위가 아니다. 우리나라와 한 시간의 시차밖에 나지 않는데, 너무 피곤한 걸 보니 말이다. 어쨌든 50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곳이 아닌가. 날아갔건 뛰어갔건 객지에 머무른다는 거 자체가 과로한 듯한 기분을 안긴다. 몸에 누적된 피로를 벗고 호텔 문을 나선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젊은 여자가 힐끔 쳐다보는듯한 시선이 흐른다. 내가 중국 사람이 아니라는 걸 들킨 기분이랄까. 나는 적어도 그녀가 중국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중국 사람으로부터 풍겨지는 특유의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마라'와 같은 아주 미묘한 향신료 냄새 말이다. 그녀도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겠지. '마늘' 때문에? 알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했지만 자연스럽게 아는 본능 같은 것처럼.


 

  로비에 혼자 앉아서 동료가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시간은 고요하게 내 주변에서 빛을 발산하고 중국 특유의 오묘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더욱 고향에 대한 향수를 고양시킨다. 호텔 바깥의 아침 빛깔, 로비 벽을 타고 흐르는 붉은색의 간접 광선,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비음이 섞인  목소리, 복(福)을 상징하는 중국인의 온갖 붉은색 치장과 알 수 없는 한자어, 사람과 한자가 홍수를 이룬다. 어지럽다. 어제 먹었던 기름진 음식들이 아직 내 몸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기분이다.



  이들이 왜 차를 자주 마시는지 알 것 같다. 어두운 것을 감추려 하는 반대편의 밝은 속성이 피로감을 안긴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의 잠김 화면을 푼다. 로밍 덕분에 인터넷에 쉽게 연결이 된다. 단 돈 만 원에 하루 동안 200메가의 데이터를 쓸 수 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고 동영상을 찍으면 데이터 1기가는 우습다. 허용된 데이터를 넘기면 3G도 아닌 2G로 연결이 되어 간단한 멋진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낼 수 없다. 기껏 웹서핑 정도나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200메가는 분명 작다. 사진 한 장이 차지하는 크기만 하더라도 보통 5메가를 상회하니 말이다. 200메가 정책이 어느 시대에 나온 결정인지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면 정책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도 인터넷이 즉시 연결되는 광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감탄이나 하고 있어야 하나.



  오전에 한 업체에 방문했다. 같이 방문한 업체 대표님의 미팅 스케줄에 동행한다. 자동판매기 사업을 하는 대표님은 새로운 제품의 생산을 위하여 중국, 즉 칭다오에 방문한 것이다. 이번까지 150회 정도 출장차 방문했다고 하니 칭다오 입장에서는 귀빈이 아닐 수 없다. 왠지 사장님의 잦은 출장이 부럽다. 매일 책상에 앉아서 내근이나 하고 있는 나는 답답한 인간이다.

  업체에 방문하여 미팅을 시작하려는데, 손님을 대하는 그들의 격식이랄까? 생수 한 통을 가져오더니 커피포트에 물을 데우고, 모두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한다. 작은 찻잔에 녹차를 우려낸 차를 한 잔씩 따라주는데, 마치 점잖은 공자의 풍미가 느껴진다고 할까. 비록 날씨가 덥긴 했지만, 고마운 마음에 깊이 음미해본다. 음, 녹차다. 그거도 아주 신선하고 남다른. 사무실에서 보는 흔한 싸구려 티백 녹차 맛이 아니라 아주 오래도록 녹차를 숙성해낸 맛이 난다. 맛이 좋아서, 뜨거운 와중에도 쉼 없이 마신다. 책상에 찻잔을 내려놓자, 다시 빈 잔을 그득하게 채워준다. 채워준 것이니 다시 마시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 마시고 다시 채워주고 그런 풍경이 이어진다. 이러다가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계속 채워주는데 마시지 않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공장에 제품 생산과정을 시찰하러 나가자고 한다. 잘 됐다 싶었다. 걸어가면서 이야기 들으니 공장부지가 만 오천 평 정도 된다고 한다. 넓다, 또 넓고 끝이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중국 땅덩어리가 크다고 하지만, 자동판매기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공장의 면적이 만 오천 평이라니 규모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여러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중간중간에 영어로 "Take a Nap"이라고 쓰인 작은 공간이 눈에 띈다. 혹시 작업자가 피로를 느낄 때 쉬는 공간이 아닐까, 속으로 생각했는데, 맞는다고 한다. 음. 모든 언어를 중국어로 표기하는 사람들이 쉴 공간은 왜 영어로 표기했을까. 이해할 수 없다.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노동자의 처우가 궁금했다. 대표님에게 물어본다. 중국 노동자들은 한 달에 얼마 받느냐고 말이다. 일행이 아마도 150만 원은 받지 않겠냐고 얘기한다. 나는 15만 원 정도 받지 않겠냐고 우스갯소리로 답한다. 나중에 대표님에게 물어보니 통상적으로 50만 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용접공은 특별히 90만 원 정도 받는다는 사실도 접한다. 역시 중국에서 제조업이 성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 회사도 하드웨어를 양산하고 있지만 이제 원가절감을 위하여 제조를, 국내가 아닌 중국으로 돌려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원하는 제품은 어떤 기술력이 소요된다고 하더라도 단 2 주면 콘셉트 제품이 나온다고 한다. 금형 비용도 한국에 비해서 약 30%의 비용이면 가능하다고 하니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없거나 현지에 믿을만한 파트너가 있다면 중국에서 제품을 양산하는 방법이 비즈니스에 좋겠다. 현지에서 사업하는 분에게 자문을 좀 받아야 할 것 같다.



  이 넓은 대륙을 가진 중국은 현재 칭다오에 약 850만의 인구가 거주 중이라고 한다. 칭다오를 침략했던 독일 사람들이 도시를 처음 개발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럴까. 유달리 도시 외관이 유럽풍이다. 또한 칭다오 맥주도 독일 하우스 맥주처럼 맛이 일품이다. 현재 짓고 있는 대부분의 아파트도 서양의 건축양식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곧 시진핑이 이곳을 방문하다고 하는데, 그가 방문하는 반경 10미터 이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령이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작업 중인 모든 공사를 일시에 중단해야 하고, 사람들은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어야 한다고 한다. 역시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약 한 달 기간 동안 생업이 끊어진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일이 현재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나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해가 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대단하다.



  오후 늦게 일정을 마치고 바닷가를 찾는다. 유명한 54광장 근처다. 해양 도시답게 바다가 가까이 있다. 물론 가깝다는 기준을 한국의 상식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꽤 많은 거리를 운전하여 바닷가에 겨우 닿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몇 년 전에 방문했던 싱가포르 머라이언 동상 주변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주변을 합쳐놓은 것 같은 디자인이다. 대륙이라는 자부심에 꽉 차 있는 사람들이 자존심도 없이, 왜 남의 것을 아무렇지 않게 베끼려고 하는 걸까. 그것도 일종의 '내로남불'이려나. 일행들과 함께 사진을 몇 컷 찍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풍경보다는 인물 사진이 훨씬 많다. 바다 냄새와 사람들에게서 나는 마라 냄새가 뒤섞여 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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