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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01. 2018

너의 날도 그랬을까.

빗방울의 연주

떠오르던 하늘. 잠시 지쳐 쉬다
그런 날엔 혼자 잠들기 좋다고
걷다가 쓸려가는 나뭇잎에 
물빛으로 인사를 나눈다

너는 풀숲에 자리를 차지하고 
투명한 눈으로 안부를 묻는다

나는 속이 들여다 보이는 
우산을 펼쳐들고
떨어지는 물방울로 흘러간다

발등에 내려앉은 
눈물이 굴러떨어져도
때로는 우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눈물이 슬픔을 잊어도
새가 하늘에 없어도 강물은 흘러가니
만나야 할 사람은 바라지 않아도
잊어야 할 사람은 울지 않아도

만나고 잊히는 것이니까
흐르는 눈물도 언젠가 마를 테니까

너의 날도 그랬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pCx5g4FnAXU

Seong-Jin Cho – Prelude in D flat major Op. 28 No. 15 (third stage)

  

  빗방울이 연주를 한다. 마음은 어제보다 한 풀 어두운 색채를 벗었다. 창밖을 스치는 비와 바람의 향기를 맡으며 괴로운 날은 차츰 비워진다. 비에는 삶의 여러 가지 양식들이 담겨있다. 어둠이 가장 짙을 때야말로 밝은 세상을 기대하는 구원의 순간을 본다는 것, 흐린 하늘을 마주하며 내 안에 숨겨진 어떤 음울함과의 동질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잔잔하다가도 자비 없이 모두에게 광폭한 에너지를 퍼부어준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삶에서 조금 떨어져서 진중한 자세로 나와 자연을 견주어볼 수 있다. 그 순간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위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한목소리로 화음을 내고 나는 그 음률에 박자를 맞춘다. 거대한 자연의 힘, 자비로운 신의 속삭임, 위대한 광경을 넋 놓고 감상하는 인간의 보잘것없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음 그 자체가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흐려서 비가 오는 거 자체로, 맑아서 햇살이 밝은 거 자체로 자연은 인간에게 긍정을 준다. 인생이 한가지 속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어려움과 쉬움이 공존한다는 법칙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지금 바닥으로 한없이 꺼지고 있을지라도 내 안에는 또 다른 밝음이 내재되어있다는 생각이 희망을 멈추지 않게 한다.

  길을 걷는다. 우산 없이 비를 온몸으로 마주하고픈 생각을 하며. 길섶에 피어난 물방울의 여러 흔적을 더듬는다. 빗방울은 물방울로 새 생명을 불어 넣는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안개가 도시를 감싸면 지척에 널린 생명들은 환희의 송가를 부르고 인간은 다만 걷는다. 풀잎에 매달린 아슬아슬한 물방울들은 바위에서 몸을 던졌던 삼천 궁녀의 전설처럼 하늘과 흙 사이에서 낙하를 거듭할까. 삶은 빗방울처럼 무한히 순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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