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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30. 2018

도시, 노동자의 삶

술판

회색 도심, 초점 없는 눈동자
사람으로 살지 않는 사막, 적막한

말을 잃은 유전자의 잔해
길을 잃은 옛 숲
버려진 산 까마귀의 빈 울음

짧고 긴 호흡, 드러누운 도로 그리고 자동차
날아들어 물결을 이루다 저무는 빛의 무리

춤추며 언덕으로 오르는 끝없는 욕망

이 모든 광경을 사랑했던 너




https://www.youtube.com/watch?v=haAgLmVJK_Y


  도시와 삶, 마음속에서는 끊임없는 교란이 벌어진다. 질문 하나, 네가 원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질문 둘, 너를 미워하는 자는 진정 누구인가. 누군가 내게 말했다. "나는 너의 안티야" 술은 잔뜩 머금은 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저주가 실린듯했다. 귓속으로 이물감이 몰려왔다. 역겹고 더러운 냄새와 소음 때문이었을까? 술집 주변으로 온통 썩은 내가 진동했다. 

  적어도 내가 속한 한 가지 세상에서는 무용한 인간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 섬뜩했다. 진탕 술은 마신 이가 떠벌인 말 치고는 적잖게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그 언짢은 말을 듣고 나는 순간 그 자리를 박차,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끝도 없는 어둠 속, 출구가 없는 터널 깊은 곳으로 더욱 거 깊게 빨려 들어갈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나는 누군가에게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이곳 직장에서 나는 한시도 여유 없이, 적당한 실적을 내면서,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며 살았는데. 마음은 방황을 거듭했다. 그 순간 마음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마음 안에는 수많은 마음들이 산다. 이웃한 마음은 서로의 존재 유무를 알지 못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외부의 성질에 감염이 되기도 한다. 바이러스가 숙주에 기생하여 그 세계를 잠식하듯 마음도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와 씨름을 하는 내가 성가신 존재였던 것이다. 마음 한 가지는 확실히 다른 마음들과 단절되었다. 고독한 마음으로, 스스로 빛을 차단한 존재로.

  온갖 잡소리와 술꾼들의 굿판이 펼쳐졌다. 술에 취할 수 없는 나와 같은 부류에겐 견딜 수 없는 난장판의 향연이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먹는 즐거움이 가라앉을 때마다 시간을 확인했다. 10분, 5분, 가끔 30분이라는 시간을 건너 뛰었다. 고함치는 것이 취미인 사람들은 먹이를 찾는 메뚜기떼처럼 자리를 옮겨 다녔다. 무엇을 팔아야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해야 이 처절한 세상을 견디기라도 할 수 있겠다는 각오를 새긴 사람처럼 자랑을 팔러 다녔다. 그런 이동이 벌어질 때마다 나는 이 세계에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이외에는 다른 생각은 찾아오지 않았다. 

  도시와 술, 그리고 사람을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팔기 위해 나타난 것일까라는 역한 생각. 교환 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 떠들썩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다, 겨우 진정이 될 즈음, 나는 다시 그 광경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이유는 모르지만, 거부하고 싶은 시간조차 나에게는 글쓰기의 질료가 된다는 생각에. 잔잔한 시간을 격정적으로 만들게도 하는 사건들이 나에게는 삶의 의욕이 된다는 역설적인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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