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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21. 2018

삶은 어제보다 달라질 수 있을까

작가의 일상

 출간한 책의 예약 판매가 시작되었다. 두 가지 극명한 감정이 현재를 지배한다. 이전보다 알 수 없지만 약간이나마 나아질 거라는 안도감과 기대감, 책 한 권을 내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는 냉소적인 시각들.

 기대는 가끔 비통한 전주곡의 그림으로 무한히 펼쳐진다. 예고편만 반복하는, 나타나지도 볼 수도 없는 본편의 상징성이 무대를 가득히 메우는 것이다. 잡목들이 울창한 언덕을 거침없이 오르다, 가시에 찔리고, 덩굴에 발목이 휘감기고,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그늘을 찾아 잠시 쉬며, 갖가지 고난을 견디고 경계 반대편의 햇살을 보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본편이 멀지 않았다는 녹슨 희망으로.

 의지를 추락시키다가 다시 고양시키며 걷는 것이다. 삶을 차분한 산책이라고 생각하며, 너저분한 생각, 상상 너머의 망상이나 기우, 집착, 불길함 같은 것들은 모두 훌훌 벗어버린 채. 

 여름은 94년의 어떤 존재를 다시 견인했다. 가장 폭발적이었다던 그 해 여름, 싱그럽고 충만했던 과거의 시절은 이미 마음에서 녹아내릴 정도로 사라지고 난 후지만, 더위에 맞섰던 몇 장의 장면은 아직 기억 저장소에 보관되어 있다. 그 해, 군에서 제대했고 복학을 위한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했다. 뙤약볕 아래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딸랑 서류 뭉치 하나를 들고 여의도에서 삼각지로 분주히 오고 가야 했다. 태양빛 아래에 놓였던 희미한 불빛의 분신 같던 존재에게 강렬했던 현실과 달리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했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연일 떠들어대는 신문 기사, 뉴스의 자극적인 외침을 귀담아듣지 않아도 얼마든지 목숨을 잃을 만한 침묵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은 살인자의 복수는 계속됐다. 무척 더웠던 여름만큼, 내 삶이 내일은 조금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부피를 키워 갔지만.

 올해 여름은 94년 이후 최고를 경신했다는 경고를 들었다. 쩍쩍 달라붙는 뜨끈뜨끈한 의자 위에 앉아 모니터 두 대와 작은 노트북에 의지한 채 나는 뜨거운 계절을 삼키고 있다.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선풍기 뿐만 아니라 에어컨이 여름에 맞서는 든든한 후견인이 되었으니. 

 무더위가 찾아와도, 고작 선풍기 하나로 태양과 맞서야 하는 긴박한 상황일지라도,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일지라도, 단순하게 뛰어들어 흘러가 보자는 생각으로 살아본다. 인간에겐 절벽 가장자리에서 두려움을 떨치고 검푸른 바닷물 속으로 뛰어내려야 하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삶이란 낮거나 높은 절벽에서 수없이 뛰어내려야 하는, 바닥의 깊이보다는 자신의 비범함을 생각해야 하는, 모순적인 생각이 먼저가 아닐까. 

 단어는 매일 절벽 끝에서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첨벙거리는 물결에 맞서서 더 먼 대양으로 단어와 함께 항해를 나서야 한다. 비록 그 여행이 편도에 그칠지라도. 단어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다는 각오로 건너편에 앉아 있는 새로운 신분과 조우한다. 단어는 나를 통하여 생성되고 파괴되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한다. 깨어지고 부서져 조각으로 흩어지다 다시 필요에 따라 자석에 이끌리듯 하나로 쏠리는 모순적인 경험. 그것을 통하여 내면은 더 단단해질까. 더 무르게 될까. 그것은 치유될 수 없는, 죽음 이전까지 누군가에게 갚아야 할, 살기 위해 치러야 할 깊은 병치레는 아닐런가.

* 작가에게 공감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단어를 디자인하라>는 7/30 출간 예정입니다. 현재는 예약 판매 중입니다.

교보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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