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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29. 2018

글쓰기로 친구를 만들어 보자

당신과 함께

내성적인 사람은 친구를 사귈 때 깊게 관계를 맺는다고 합니다. 사귀는 거 자체에 대해서는 외향적인 사람보다 어려움을 겪는 편이지만, 한 번 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세계를 주고받게 되면 비교적 오래도록 만남을 유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도 그런 편입니다.

 중학교 1학년 등교 첫날 점심시간의 이야기입니다.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탔던 저는 도시락을 먹기 전까지 친구를 사귀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혼자 먹게 되는 상황이 미치도록 싫었지만 그렇다고 호감이 가는 친구에게 다가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혼자서 속만 끓이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았던, 단 4시간 동안 눈빛을 주고받았던, 친구가 도시락을 같이 먹자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 친구가 먼저 말을 건네지 않았다면 아마도 저는 혼자서 쌀 알갱이 대신에 고독을 씹어댔을 겁니다. 14살 짜리가 고독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죠. 그 시간은 친구 덕분에 무산이 됐습니다만 말입니다. 물론 아쉬운 생각은 없습니다.

 친구란 함께 성장하고 꿈을 키워나가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친구가 좋다면 그깟 이익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죠. 친구의 사전적인 정의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또는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하네요. 학창 시절에 만난 친구들은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관계가 꾸준히 유지된다고 합니다. 어떤 목적으로 만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관계가 퇴색되지 않는다는 의미겠죠. 세월이 지나도,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지내도 만나기만 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할수록 그런 친구를 만나기 힘듭니다. 목적과 수단을 떠나서 순수한 관계를 맺기가 그만큼 사회에서는 어렵다는 방증이겠지요.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서 먼저 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나의 약점이 다른 사람에게 무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자본주의가 만든 이익의 산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습니다. 아무리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사회일지라도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저만해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늘 사람에 대한 갈구가 있습니다. 특히 저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 꿈꾸는 세계가 같은 사람들을 보면 친구로서 관계를 맺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중학교 시절처럼 친구의 모습 하나만을 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 사람의 직업, 성별, 나이와 같은 다양한 잣대들이 친구의 기준을 만들고 나와 비교하게 합니다. 어린 시절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세대를 넘나드는 친구가 될 수는 없는 걸까요?

 단적으로 말씀드린다면 글쓰기가 함께 한다면 가능합니다. 국경, 나이, 성별, 지역 불문하고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가 어떻게 친구를 만들까요? 우리나라 말에 글벗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글벗은 "글로써 사귄 벗"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어로 비슷한 말은 '문우'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한자어보다는 순수 우리말을 쓰는 게 더 좋겠습니다. 글벗은 함께 글을 쓰는 사이를 의미합니다. 한 분의 스승을 모셔놓고 같이 글을 배우는 교우 지간도 글벗이라고 할 수있습니다만, 저는 좀 특이한 형태의 친구를 사귀고 있습니다.

 바로 그 친구는 온라인에서 함께 글을 쓰는 친구들입니다. 여기서 복수에 주의해야 합니다. 한 명이 아닌 여러 친구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SNS는 다양한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사이버 광장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그 공간에서 글쓰기라는 공통적인 목적으로 모였습니다. 서두에서 친구란 함께 성장하고 공통의 꿈을 키워가는 사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우리는 사는 곳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며 심지어 가치관도 다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만났다면 절대 친구로 발전할 수 없는 사이였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글쓰기를 통하여 친분을 나누며 때로는 친구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설마 그러겠어?라고 의심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한 번 모임에 참석해서 글쓰기를 시작하라고 권유해드리고 싶네요. 

 글쓰기 친구는 브런치와 블로그, 페이스북 등 같이 글을 쓰는 공간이라면 어느 곳에서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같이 글을 쓰고 배우며 서로의 글쓰기를 응원해주기 위하여 자주 모입니다. 물론 온라인입니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하면 용기도 북돋워줄 수 있고 피로도 잊고 꾸준히 꿈을 향하여 달릴 수 있습니다. 저도 혼자 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런 모임은 제가 시작한 것도 있지만 다른 분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브런치의 "피터 김" 님은 많은 모임을 이끌어주고 계신대요. - 경험수집잡화점 - 그분과 함께 하면서 저도 더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 중 몇 분은 제 친구가 될 수도 있겠죠. 어쩌면 제 스승이 될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이와 성별 이런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서 말입니다.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이것보다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더 중요합니다. 친구에겐 양보와 준중, 배려, 희생 같은 단어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무엇을 공유할 수 있고 한가지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서로 돕고 응원해야죠. 조금 더 앞서가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그는 그 경험을 전수해주는 걸 아까워하면 안 됩니다. 저는 지식이란 혼자 갖고 있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서 나눠가질 때 더 큰 힘이 된다고 믿습니다. 지식이 합쳐져야 그것을 기반으로 지혜도 생산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즐겁게 글을 씁니다. 
물론 때로 즐겁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삶이 늘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고통스러운 부분, 상처받은 부분이 있다면 그런 것을 서로 위로하고 나누기도 합니다. 아픈 것은 혼자 앓는 것보다 글 친구들과 나누면 아픔이 더 줄어듭니다. 1차로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으로 마음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고, 2차로 글벗들의 위로로 아픔을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아프거나 외로운 분들, 친구가 필요한 분들 글로서 친구 한 번 만들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작가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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