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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13. 2018

스쳐 지나가는 단상들 #10

날로 먹는 인간들

#날로 먹는 걸 좋아하는 인간 1

여권을 갱신하려고 구청에 방문했다. 내년 초 해외 워크숍 일정에 맞추려면 만료일이 채 6개월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동안 다녀오려고 부랴부랴 가까운 구청을 향해 뜀박질을 했다. 사진 한 장, 신분증, 신청서만 준비하면 끝, 비교적 이른 시간에 끝날 거라 예측했다. 번호표를 뽑고 의기양양하게 서류를 내밀었다. 담당자는 서류를 훑어보더니 '이 사진 문제 있어요', '네? 그 사진 얼마 전 중국 비자 받을 때도 문제없이 사용했는데, 무슨 문제에요?' 담당자는 사진이 흐려서 나중에 스캔하면 출입국 심사할 때 정밀 검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귀찮으실 텐데 굳이 하려면 해드릴 수는 있어요',  '네 다시 찍어 올게요', '나가시면 길 건너편에 사진관 있어요'

구청 주변엔 돈의 냄새를 찾아 킁킁대는 사진관들의 간판이 득시글거렸다. 점심시간은 점점 달아나고 내 발걸음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문을 다급히 열고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단도직입적으로 '저기, 여권 사진 얼마에요?', '네 3만 원입니다' 뭐? 3만 원이라고?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나처럼 조급한 사람들 날로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 관상을 보아하니 회를 좋아하게 생기긴 했더라. 나도 모르게 카드를 불쑥 내밀었다. 순식간에 3만 원이 공중으로, 아니 네트워크 속으로 분해되는 순간이었다.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켰다. 시장 가격을 알아보려고 네이*에 접속하려 했으나 네트워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카카오* 메시지조차 발송이 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 무슨 괴이한 일인가?' 누군가 LTE 중계기에 방해 전파라도 쏜단 말인가? 사장의 얼굴을 향해 빔을 쏘았다. 차분하게 시간이 흘렀다. 진정을 찾고 보니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다. '결제 취소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건물을 박차고 나왔다. 어디 전파 방해 장치가 숨겨져있나 두리번거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건물에서 탈출하자마자 다시 검색을 시도했다. 웬걸? 데이터가 시원하게 터졌다. 검색 결과 '여권 사진 6장, 12,000원' 욕이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날로 먹으려는 인간 1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날로 먹는 걸 좋아하는 인간 2

브런치를 통하여 제안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흥분된 순간이다' 내용은 4차 산업 혁명과 관련된 기고 요청이었다. 로켓이 펀치를 때린다는 이름을 가진 비즈니스 네트워크 관련 회사였다. 기쁜 마음을 누르고 답장을 보냈다. 기고글의 분량은 어느 정도인지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 원고료는 어떻게 책정되는지 물었다. 담당자로부터 도착한 답신을 들춰보니 10가지 질문에 대하여 5가지 정도를 선택하고 그것에 5문단 정도를 쓰는 분량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원고료는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 인간도 날로 먹으려는 거구나.' 바로 답장을 다시 보냈다. '네 고료 없는 원고는 기고하지 않습니다. 이런 노력 봉사는 하면 안 된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제대로 된 콘텐츠를 받을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날로 먹는 인간 유형을 연달아 두 명 만났다. 근래에 들어 특히 자주 보는 진상들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 외에도 내가 몸담는 분야에서도 날로 먹는 인간을 자주 목격한다는 사실이다. 돈 한 푼 안 내고 공짜로 소프트웨어 개발해달라는 인간, 투자한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요구하는 인간. 대가 없이 글 기고해달라는 인간. 솔직히 말해서, 쌀 20kg이라도 주면 바로 달려갈 텐데……

특히 남의 재능을 하찮게 보는 인간이 제일 무섭다. 피땀으로 얻은 경험을 날로 얻으려는 인간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다. '이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 남의 경험과 삶의 철학을 듣고 싶다면, 또 배우고 싶다면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라고, 그래야 배우는 사람도 제공하는 사람도 그 시간에 성실하게 임하게 되는 것이라고. 날로 먹고 싶다면 횟집에서 회나 실컷 쳐드시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네 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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