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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an 19. 2019

나의 비만 탈출기

독하다 독해, 대단해


“야 오랜만에 본다. 근데 너 왜 이렇게 살쪘어?”
“완전 돼지네. 뚱돼지. 너 굴러다니겠다 야”



살이 찐 것은 남산만 한 배만 봐도 짐작은 했지만, 무늬만 친척인 형에게 들을 소리는 아니었다. 훅 치고 들어오는 말은 대개 무방비 상태에서 가슴팍을 찌른다. 무대응이 현명한 길이라고 성인이 말씀하셨지만, 그날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일이었다. 우주 최강 소심이었던 나는 가마니처럼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바보같이 고개만 푹 수그린 채.



그날로 다이어트를 하다 죽기로 결심했다. ‘아, 이런 식이면 매일 결심만 하다 죽었을지도.’ 복싱 학원에서 8자 스텝이라도 밟아야 하나, 집 앞 공원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로 뛰다 트랙에서 숨이라도 멎어야 하나, 헬스클럽 종신회원이나 되어 볼까, 최후의 방법으로 먹는 횟수를 대폭적으로 줄여 보는 게 어떨지, 학자의 자세로 여러 수단을 연구했다. 왠지 홈쇼핑에 정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이 꿈틀거릴 무렵, 우연하게도 사이클론이라는 희대의 명작을 팔고 있는 걸 발견했다.


바로 전화기를 붙들었다. 전화기를 움켜쥔 내 손모가지를 꼭 붙잡은 아내의 안타까운 표정도 같이 보였다. 흥분하여 눈동자가 좀비처럼 탁해진 사람을 어찌 말리랴. 5분쯤이 경과됐을까, 참으로 긴 눈치싸움, 아니 여정의 시간이었다. 폰으로 25만 원이 결제됐다는 문자가 당도하자,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마치 다이어트의 서막을 알리는, 흡사 폭풍전야의 위엄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물건만 도착하면 다이어트는 사실상 끝장난 셈이었다.


키 173, 몸무게 98(거의 100). 황망한 숫자가 아닌가. 중학생 이후, 키는 답보 상태에 머물렀지만 몸은 좌우로 세력을 넓혔다. 방향이 북쪽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몸무게가 상승하니 건강검진 용지의 온갖 숫자들이 임계치 구간을 넘어섰다. ‘너 지금 위험해’라는 메시지였다. ‘너 죽을지도 몰라. 이 높은 콜레스테롤 숫자들 어쩔 거야’ 글쎄 나도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다.


다이어트에 당장 돌입해야겠다는 결론. 일단 돼지 같다고 놀린 친척 형의 입부터 다물게 해야 했다. 이제야말로 십수 년 동안 각오만 다지다 끝나버린, 비만에서 탈출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내가 경험한 실패 혹은 성공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1. 운동 기구 사이클론(★)


홈쇼핑에서 주문한 사이클론이 드디어 도착했다. 흥분을 감추며 박스를 찢었다. 위용을 드러낸 크고 아름다운 사이클론. 손으로 파지 할 수 있는 육중한 두 개의 봉과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을 자아내는 탄탄한 페달 두 개, 게다가 8단계까지 조절이 가능한 스위치와 다목적 칼로리 표시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다이어트 머신이 아닌가. 실행을 위한 세부적인 스케줄은 개뿔, 일단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다. 오늘까지는 흰밥 세 공기와 경건한 자세로 치킨을 영접하는 거다. 당분간은 다이어트라는 명목에 몸을 희생시켜야 하니.


사이클론 위에 사뿐 올랐다. 팔을 휘저으니 발이 움직이고, 발을 허우적거리면 팔이 저절로 움직이는 믿음직스러운 체계였다. ‘이거 진정 살은 빠지긴 할까?’ 마치 이것은 한쪽이 박자를 맞추면 나머지는 흥에 겨운 목소리로 추임새만 넣으면 되는, 실로 다이어트와는 상관없는 획기적인 발명품 같았다. 이 세기의 작품을 앞두고 긴장에 휩싸였다. 오늘 한 시간 투자하면 800Kcal이 소모되는 셈이니까, ‘1Kg을 빼려면 대략 9,000Kcal를 소모해야 하고 최소한 10일은 죽어라 매달려야 겨우 1Kg는 뺄 수 있겠구나’ 견적이 나왔다. 비장했지만 한심했다. 하루에 1시간씩 10일은 운동해야 1Kg이라니 그럼 20kg 감량 목표는 언제 달성한단 말인가. 


위의 사진보다 훨씬 후졌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페달을 덮은 검은색 플라스틱과 맞닿은 쇠 부분이 서로 마찰을 일으키면서 의문의 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운동량을 증가시킬수록 가루는 장판을 뒤덮었다. 흑색 가루가 원룸을 뒤덮은 나머지 질식당하는 상상을 했다. 그래도 바닥에 매트를 깔아놓으면 상관없을 거라 믿었지만, 가루가 태산을 이룰 무렵 페달이 툭 부러지고 만 것이었다. ‘둔중한 몸이 자빠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 아닌가.’ 상담원은 날이 새기 전에 새 물건으로 교체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페달은 좌우 측으로 연달아 두 번 더 부러졌고, 나는 이 몹쓸 기계를 만든 ‘마데 전자’를 비난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러분이 상상하는 대로 나는 홈쇼핑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결국 환불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뚱땡이에겐 사이클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교훈도 하나 얻었고. 어쨌거나 대실패.



2. 가정용 헬스 사이클(★★★★)


‘페달에 쏠리는 하중을 분산시켜야겠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내 손을 붙잡고 동대문 헬스 상가 쇼핑에 나섰다. 우리 집 안방보다 넓은 헬스 머신에 입을 쩍 벌리다 아담한 헬스 사이클 한 대를 보았다. 수백만 원의 헬스클럽용 머신에 비한다면 카드 할부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저렴한(?) 물건이었다. 우리는 그 물건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사이클론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안장에 엉덩이를 바짝 붙이기로 했다. 페달이 가루가 되는 사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대 후 10년 넘도록 굳어버린 몸은 어찌할까?’ 10분 동안은 딱딱한 몸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강도를 2 정도로 맞춰 서서히 달렸다. 심장이 견딜만하다는 신호를 보낼 때마다 강도를 한 단계씩 올리며 한 시간을 내리 달렸다. 


싱크로율 70%

문제는 심각하게 지루하다는 점이었다. 아이패드는커녕 아이팟 터치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운동이란 형체도 냄새도 없는 고독과의 경쟁 그 자체가 아니란 말인가. ‘이 살덩어리야 제발 사라져라!’ 다짐을 외치며 땀이 홍수를 이룰 때까지 달렸다. 한 시간, 전력 질주를 마치면 매트 위에 땀이 넘치다 안방까지 범람했다. 사이클은 그 어떤 운동보다 뚜렷한 성적을 보였다. 2년 이상을 꾸준히 투자한 결과 20Kg 이상 감량에 성공한 것이다. 



3. 걷기(★★★)


헬스 사이클 덕분에 20kg 이상 감량에 성공했지만, 홀쭉해진 뱃살에 만족하자 몸무게는 예전으로 급속히 돌아가려 했다. 게다가 지루한 사이클엔 더 이상 오르고 싶지 않았다.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 고민하다 걷는 걸 택했다. 


’나의 스타트업 실패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2004년부터 5년 동안 사업을 체험했다. 사무실은 임대료가 저렴한 포이동 일대에 자리했다. 집은 금호동이었는데, 시험 삼아 사무실에서 집까지 걸어보니 대략 7.8킬로미터 정도 걷는 셈이었다. ‘밤 10시, 현재 온도 영하 16도, 몸에서 땀이 솟는다.’ 강남 대로를 지나쳐 압구정동에 이르기까지 사업 구상과 갚아야 할 돈, 해결해야 할 일거리를 생각하니 영화 16도의 추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군대 행군 때마다 말썽을 부리던 물집조차 잠잠했다. 문제는 동호대교라는 관문이었다. 한강의 칼바람도 장애물이었지만, 야밤에 한강을 혼자서 넘어가는 걸 자살로 착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큰 벽이었다. 


맹추위든 한강의 검은 강물이든 발바닥의 물집이든 꾸준히 걷다 보니 다리가 튼튼해지는 것은 물론 심장까지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가기는 겨울에 한정되었지만, 몸무게 줄이는데 효과를 보였다. 여름이 닥치자 불어난 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가기 프로젝트는 돌연 중단되었다.



4. 굶기(★)


간편하고도 미련한 짓이었다. 라면과 밥의 추종자가 굶는다니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굶는 것은 음식의 집착에 빠지게 했다. 억제하는 건 외부에 반발력만 일으킬 뿐이다. 굶으려고 각오를 다질 때마다 뇌는 ‘먹고 싶어, 먹고 싶다고’ 더 치킨과 피자를 눈앞에 펼쳤다. 


굶기가 의지와의 싸움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인간은 생존하도록 진화되지 않았는가? 먹는 건 생존하려는 사피엔스의 본능이다. 억제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굶게 되면 세포는 근육에서 에너지를 얻으려 한다. 근육량이 손실되면 기초대사량이 떨어지고, 다시 요요현상을 초래하여 폭식을 하게 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절대 시도하지 말아야 할 다이어트 법이다.



5. 헬스클럽(★★)


회사에서 집까지 걷는 것 자체도 지루해졌다. 태생이 지루한 인간이다. 자전거 타기도 귀찮고 걷는 것도 귀찮고 움직이는 거 자체가 귀찮아지자, 숨만 쉬어도 살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몸무게 줄어들었다, 늘어나는 것이 무슨 정규분포 곡선도 아니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단 말인가. 


새해가 시작되자 평생 숙원사업이었던 헬스클럽에 도전하기로 했다. 마침 3개월 10만 원이라는 플래카드가 부부를 유혹한 것이다. 아내와 함께 거금 20만 원을 투자한 날, 트레이너는 체지방 분석 그래프를 보여주며, ‘당장 운동하지 않으면 성인병에 걸려 죽어요’라고 경고를 보냈다. 한 시간 근육, 한 시간 유산소 트레이너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그는 거의 신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헬스 기구에 기가 눌렸지만, 100kg짜리 벤츠 프레스를 너끈히 들어 올리는 옆집 아저씨의 숨겨진 파워에 숨도 못 쉬었다.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퇴근 후 두 시간 이상, 헬스클럽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물론 한 달만 딱, 당신이 그렇듯이 나도 한 달만 모범생이었고, 더 이상 운동하면 근육이 흉물스러워진다고 나태함을 선택했다. 다시는 그들의 마케팅에 속지 말아야겠다 결론도 얻었으니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게 아닐까? 무산소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최고의 다이어트 효과를 나타내니, 업계 비밀을 안 것만 해도 소득은 얻은 셈이었다.



우리 실망하지 맙시다.


오늘 운동 시작했는데, 몸무게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서두에 밝혔듯이 1kg을 감량하려면 적어도 9,000kcal 이상을 소모해야 한다. 30 ~ 49세 성인 남자의 하루 기초대사량이 1,700kcal이라고 한다. 숨만 쉬어도 1,700kcal은 소모한다는 얘기다. 한 끼를 먹게 되면 얻는 칼로리가 평균 잡아 500kcal이라고 할 때, 세 끼에 1,500kcal가 계산된다. 물론 삼겹살이나 치킨 한 마디를 해치운다면 훨씬 많은 칼로리가 추가되겠지만. 삼시 세끼를 꼬박 먹어서 1,500 kcal을 얻고 기초대사량에서 1,700칼로리를 뺀다면 하루 약 200칼로리를 더 소모하는 결과를 보인다. 


이런 식으로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1kg을 빼야 한다면, 9,000kcal / 200kcal 즉 45일이 필요한 셈이다. 다이어트 도중에 삼겹살이나 치킨을 금한다는 경우에. 하루에 운동으로 500 칼로리를 더 소모한다고 가정하면, 9,000 / 700 13일 정도로 산술적인 결과가 도출된다. 이 결과는 단순한 칼로리 계산만으로 산출한 결과다. 다이어트는 사람마다 다른 체질을 고려해야 하며, 칼로리보다는 탄수화물 또는 단당류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보고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실망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단기간에 별 효과가 없다고 제자리인 저울의 숫자에 절망할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해야 할 긴긴 싸움이라는 거다. 숨만 쉬는 것으로 1킬로 감량하기 위해 45일이라는 단순한 산식이 성립하지만, 실제 다이어트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따라오지 않는가. 


아침에 사과 한 쪽

다이어트는 죽기 전까지 싸워야 할 진정한 적이다. 수많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는 아침에 따뜻한 물 한 잔, 사과 한 쪽, 견과류 조금. 점심에 두유 하나. 그리고 정상적인 저녁식사. 이런 생활을 시작한 지 거의 2년이 넘었다. 어느 정도 몸은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고 믿는다. 운동은 작가 놀이 때문에 거의 못한다. 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 오래도록 글을 쓰기 위해선 건강이 우선인데, 뭔가 반쪽자리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착각도



마무리


누구나 말랐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내 체질로 봤을 때, 군대 가기 전 28 사이즈 허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어쨌든 90킬로에 육박했던 몸무게를 70킬로대로 줄였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이유는 누군가의 “너 돼지야“, 라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상처가 되는 말 한마디가 역설적이지만 삶의 획을 긋기도 한다. 과거에 상처를 남겼던 “돼지 같다”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다이어트는 운명이 된 셈이랄까. 


과연 나는 다이어트에 성공했을까? 실패했을까? 글쎄 반절의 성공이라고 할까? 단기간에 끝날 싸움은 아니니 버틸 노하우가 필요하겠다. 최근에는 먹방이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아내는 말한다. ‘먹는 것만 보고 있어도 대리만족이 되지 않아?’ 글쎄, 식욕이 떨어지는지 오르는지 잘 모르겠다. 



친척 형은 더 이상 몸매를 두고 충고를 하지 않는다. ‘왜? 살이 빠졌으니까’ 10년 만에 만난 동창들이나 옛 직장 동료들은 기겁을 한다. “독하다 독해, 대단해’라고 말한다.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되었냐고 야단들이다. 나도 모르겠다. 적어도 다이어트는 죽을 때까지 숙제라는 건 배웠으니, 이제는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까? 뭐 오늘도 라면과 빵을 흡입하겠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지 않은가. 언제든지 리셋할 수 있는 자정이 우리에게 있으니까.



내일(01/20) 오전 11시에는 Peter Kim 작가님 '퇴사는 답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펼칩니다. 퇴사하고 나와서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를 하면 쿨하고 대단한 것처럼 보는 여기는 사회적인 경향을 짚어봅니다. 퇴사가 과연 정답일까요?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7명의 작가들이 펼쳐내는 성장 스토리, <함께 쓰는 성장의 비결>은 매일 오전 8시에, (주말에는 오전 11시에) 발행됩니다. 그 내용이 궁금하다면, 매거진 구독을 눌러주세요. 한 뼘 더 성장할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참고문헌] 다이어트와 ‘먹방’ 시청이 식욕에 미치는 영향 - 이솔비, 김동현, 김효순(대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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