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센 강의
이번 주에 필사할 시는 황동규 시인의 "오늘은 아무것도"였다.
오늘은 아무것도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침에 편지 반 장 부쳤을 뿐이다.
나머지 반은 잉크로 지우고
확인할 수 없음이라 적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주소뿐이다.
허나 그대 마음에서 편안함 걷히면
그대는 무명씨(無名氏)가 된다.
숫자만 남고
가을 느티에 붙어 있는
몇 마리 까치가 남고
그대 주소는 비어버린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에 소금 친 물 마셨을 뿐이다.
우리에 나가
말 무릎 상처를 보살펴준다.
사면에 가을 바람 소리
울타리의 모든 각목(角木)에서 마음 떠나게 하고
채 머뭇대지도 못한 마음도 떠나고
한치 앞이 캄캄해진다.
어둠 속에
서서 잠든 말들의 발목이 나타난다.
내일은 늦가을 비 뿌릴 것이다.
황동규
시를 읽은 나의 단상
그래 가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순간이 방문한다.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낯선 감정에 직면해야 하는데, 달갑지 않은 손님을 앞에 두고 채비를 나설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감정이 만든 감옥에 스스로 갇힌다고 할까? 이유는 해석이 곤란하다. 마음이 그런 상태에 빠졌다고 신호만 보낼 뿐. 나는 신호를 듣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다음 날을 기다리는 걸 택한다.
시인처럼 펜 하나를 들었다. 오갈 데 없는 마음을 붙잡고 달래기를 수없이 반복했으나 한구석에서 들뜬 말들이 먼지처럼 가라앉았다. 단어는 쓸려갔으나 고요했다. 느릿느릿 몇 마디의 음성을 따라 글자를 생산했다. 내 것은 아니었다. 마음은 이제 떠나요,라고 나직이 속삭였다. 난 무용한 말에게 말했다. 당신이 떠나겠지만, 난 가을 끝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풀며 기다리고 있겠다고.
필사 인증
#문화센터 강의
롯데백화점 평촌점에서 글쓰기 강의를 처음으로 진행했다. 전날부터 당일 아침까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긴장하면 지고 설레면 이긴다'라는 김태원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긴장하지 말자. 머릿속에 든 생각을 풀어내면 그만이다,라는 주문을 끝없이 외웠다.
9분이 참석했다.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머릿속에 든 생각을 그대로 나눴다. 정보는 나눌수록 커진다는 원리를 잊지 않으려 했다. 아는 것은 개인이 보유한 경험에서 기반하지만 타인에게 전파할수록 덩치를 더 키운다.
글을 직접 써 보는 시간을 가졌다. 글 쓰는 첫 시간에 갖는 '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말이다. 종이에 직접 손으로 쓰는 분, 노트북에 쓰는 분,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쓴 글을 낭독하고 각자의 시선을 교환했다.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당신의 감정 날씨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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