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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03. 2019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시 필사 기형도 "바람의 집 겨울 판화"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삶은 때로 가난한 언어로 번역된다. 내 유년 시절, 언어의 형상도 그랬다. 도망치고 싶어도 과거는 현재와 뒤섞이고 말았다. 잊힌 얼굴들은 달처럼 떠올라 새벽이면 소리 없이 사라진다. 그리움이 어느 순간 물거품처럼 가라앉듯 나도 야박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모순일지라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문받았으니.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은 가난이라는 페르소나를 벗고 싶어 하고 나는 다시 대화에서 외면을 선택한다. 한 발짝, 두 발짝 수천 발짝 성큼 떨어져서 그날, 그 밤의 헐벗음, 맹렬한 추위를 지운다. 시인의 도발처럼, 무서운 소리가 문을 두드린다. 나는 세상의 겁박으로부터 차단되길 소망한다. 세상의 모든 기원으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할 테니. 


내 안에서 파도치는 비밀스러운 소리가 무엇이든 허물어버린다. 나는 잠자코 그 광경을 목격한다. 무수한 가르침의 목소리를, 냉혹한 시인의 울음소리를, 잊힌 기억들의 나지막한 기도 소리를 들여다본다. 차가운 소리가 가슴에 몰려와 불길을 쓸어내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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