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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08. 2019

그립다, 하니 더 사무치는 그리움

백수의 아무말 대잔치

호수1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그립다,라고 말하니 더 사무치는 그리움. 이름을 부르면 너라는 글자는 공기 중에서 흩어지고 말아. 그래, 우린 신기루였을지도. 어쩌면 안개 낀 새벽, 피어오르다 가라앉는 봄비, 물기를 잠시 머금은 투명한 외로움 같은. 


지난 봄날을 노트에 끄적였어. 흔하디 흔한 계절의 끝인사조차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난 차라리 오후 2시의 아스팔트가 빚은 비극의 모델로 남기로 했어. 한낮, 그림자 없는 도시 골목을 서성이는 남자가 되기로 한 거야. 하지만 태양은 언제나 나를 이방인 취급을 했어. 그게 내 원죄였던 셈일지도 몰라.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어. 어느 순간 느린 꿈을 꿨어. 꿈속에서, 밤마다 설익은 생각이 플랫폼으로 배달되면 우린 작은 인사로 마중을 나갔지. 그럴 때마다 열차는 다시 떠나야 했어. 넌 열차 안에 앉아 창에 기댄 채, 말없이 날 바라보았지. 물론 난 플랫폼에 혼자 서 있었어. 입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어. 어떤 힘에 제압당하는 것 같았어. 그래, 그것은 우리가 안아야 할 영원한 숙제인 셈이었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어.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도 우린 그날이 마지막인 줄 오해했던 거야.


너를 보내고 그런 밤바람을 혼자 맞을 때마다 난, 서늘한 공기와 약속이라도 해야 했지.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새벽 2시라 할지라도 난 주저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거야. 너에게 달려갈 수 있다면, 난 바람의 조각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생은 떠다니는 존재가 되고 싶었어. 이런 몹쓸 기억에 집착하는 내 몸짓이 한없이 가벼워져. 


벤치에 앉았어. 가로등에서 불빛이 깜박거렸지. 난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나머지는 반대 방향에 아무렇게나 걸쳤어. 그런데, 그 순간이 그렇게 아득하고 먼 거야. 내가 누구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어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난 큰 숨을 쉬었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들을 가만히 세었지. 하지만 그런 조용한 순간은 오래 연명하지 못했어. 난 막차 시간표를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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