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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08. 2019

퇴사 기념 선물

아무말 대잔치

퇴사 기념으로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선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고 싶은 게 혹시 있었나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생각을 뒤적거려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내가 이토록 물욕이 없던 사람이었나, 이제 신선이 되려나 보군.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너무 이상했다.


마지막 기회라며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잘 생각해봐. 선물이라고 선물, 갖고 싶은 거 없는지 잘 생각하고 말해봐. 글쎄 잘 모르겠어. 굳이 말해야 한다면 책이 좋겠어. 아내에게 리디북스에 충전이나 해달라고 해야겠는 걸. 고작 얻은 결론이 리디북스 충전이었다. 


설마 지금 내가 우울한 건 아니겠지? 몇 년 동안 대표의 멘탈 쓰레기통 역할을 하고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어. 정신이 완전히 해체됐을지도 몰라. 뭔가를 갖고 싶은 욕망이 생기려면 마음이 복구될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 근데 욕망이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몰라. 왠지 그런 것 같아. 욕심이 사라졌다는 건 의욕 상실을 증명하는 거겠지? 진실 듣기를 유보해야 했다. 정말 우울증에 빠지기라도 한 건지 내 상태가 걱정됐으니까.


그래, 나는 20년 동안 죽도록 직장 생활을 하며 돈을 모았어도 '나를 위한 물건 구매하기'에 지독하게 인색했다. 가족을 위한 물건 구매는 주저하지 않았지만 내것은 철저하게 이유를 따졌다. 늘 과도한 이유와 논리를 요구했다. 생각해봐, 그 물건이 꼭 필요한 거야? 집에 다른 대체품이 이미 있잖아. 적어도 이틀은 생각하고 다시 얘기해보자고. 지금 쓰는 2014년형 맥북 말이야. 아직 파이널 컷, 비주얼 스토디오 멀쩡하게 잘 돌아가잖아. 서재에 쌓인 책들을 봐. 수북한 먼지 보이지? 근데 또 새 책을 들인다고? 죽기 전까지 다 읽을 수 있겠어? 카메라는 어쩔 거야? 렌즈 사고 주말마다 출사 다닌다더니 카메라 켜본지 6개월 넘었지? 나는 늘 이런 팩트 앞에서 입을 닫아야 했다.



사는 이유보다 안 살 이유가 천 개는 더 많을듯한 현실. 사놓고도 정작 활용할 자신이 없는 현실. 그냥 갖고 싶다는 추상적인 말이 전부인 현실, 나는 합당한 이유가 빠진 현실을 보완할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이용할 건지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나는 그 물건이 원래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해석을 내어 놓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를 이롭게 하는 거라 여기며.


다시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건 책뿐이었다. 다만 먼지에서 자유로운 전자책이라면 모자란 설득력도 보완될 것 같았다. 그 생각이 아직은 가설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지금 욕망과 좌절로 삐그덕대지만 곧 자신 있게 대답할 날이 올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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