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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07. 2019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면

아무말 대잔치

삶에 목적이 없길 가끔 바란다. 내가 태어난 목적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희박한 확률 싸움의 결과가 내 존재를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나는 목적이라면 어디든 수색이라도 할 듯 뛰어 들 태세다. 하지만, 목적은 고통을 부른다. 내가 태어나서 현재까지 겪은 시련, 앞으로 체험해야 할 통증에 대하여 누군가 설명해주길 바란다.


그렇다. 나에게 필요한 건 납득이었다. 견딜만한 고통만 감당하면 된다고, 그것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누군가 충고해주길 기대 헸다. 그 단어는 '인정'으로 설명이 되었고 때때로 '희망'으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완벽한 인정도 희망의 근거도 찾지 못했다. 내 결핍을 옹색하게 하는 말이 전부였을 뿐. 결핍이 미래의 나를 잉태하는 걸까? 미래가 과거의 결핍을 되살릴까?


나는 승부사도 도망자도 아니다. 다만 걷는 사람이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므로 걸을 뿐이다. 걸음 끝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차가운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이 무거운 발걸음에 의지라도 되었으면. 



파랗게 물 든 하늘, 내리쪼이는 태양의 흰 속살, 정체된 바람, 기다리는 사람들, 묵직한 노트북 가방, 그리고 어디선가 도착 알림음 대신 젊음의 냄새가 불어왔다. 전광판에는 다음 도착할 버스의 잔여 시간 '3분'과 그 옆에 여유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찍혔다. 3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순간 나는 여유를 부렸으면 했다. 맞은편 학교로 방향을 틀었다. 35도, 최악의 더위가 초록 운동장을 뒤덮고 있었다. 


'폭염 경보 발령, 외출 자제 바람' 나는 재난 문자를 확인하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들의 등을 따라 흰 광선이 이글거렸다. 아이들의 땀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도 일순간 증발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흡싸 구름 속에 가려진 파란 하늘과 닮았다. 동그란 공이 공중을 향하면 나는 아, 하고 소리를 지르려다 고개만 끄덕거렸다. 



3분이 지났고 버스는 소리도 없이 도착했다. 나는 자리에 앉았고 서늘한 바람이 어깨에 도착할 때, 노트북 가방을 무릎에 올렸다. 평화가 잠시 찾아온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목적을 다시 회복한 사람처럼 들떴다. 목적지까지 1시간이 남았다는 계산 결과를 접한 후, 나는 안심하는 사람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FooSj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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