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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10. 2019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잃어버렸어요.

백수의 아무말 대잔치

퇴사하고 나는 카공족으로 신분을 대폭 상승시켰다. 시간에서 자유로워진 후 카페에서 자주 글을 쓰는 편인데, 콘센트의 존재 여부, 와이파이의 제공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8시간 이상을 버텨야 하니까. 


강남 모처의 카페를 찾았다. 서점 내부와 섞인 묘한 카페다. 카페의 이름은 P카페로 하겠다. 몇몇 사람뿐인 걸 보니 조용한 카페임이 분명하다. 웬걸 자리마다 콘센트까지 구비되어 있다. 이왕이면 구석자리가 좋겠다. 가방에서 노트북, 어댑터, 핸드폰 충전 케이블 이런저런 장비를 주섬주섬 꺼내 든다. 요즘에는 휴대용 선풍기까지 추가됐으나 날씨가 선선한 관계로 자주 써먹진 않는다. 괜히 무겁기만 한 녀석이 아닌가. 가만있어 보자 난 백수가 아닌가. 얼마 전 데이터 무제한에서 레벨이 강등됐지 아마? 


저기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뭐예요?

영수증에 쓰여 있잖아요.

아, 제가 영수증 버렸는데...

쌩...


이런,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적어 놓지 못했다. 이런 한심한 인간. 영수증에 적혀있지 않냐고 훈계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말이 서늘하다. 테이블에 올려진 아메리카노가 나를 책망한다. 뭔가 첫 단추부터 잘못 꾀고 말았다. 오늘 글은 완벽히 실패할 것 만 같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컴백홈 해야 할 것인가, 10분만 고민하기로 한다.


10분, 아니 20분이 흘렀다. 노트북에 전원이 들어온 지 한참이다. 20분째 공짜 와이파이를 찾아 헤매고 있다. 중국어로 된 글자가 보인다. 근처 외국인을 위한 카지노 호텔이 있나 보다. 반가운 마음에 클릭부터 하고 본다. 공짜로 쓰고 싶으면 광고를 보란다. 느긋하게 앉아서 알아볼 수 없는 글자를 아는 사람처럼 구경한다. 체감상 한 시간은 지난 것 같다. 드디어 광고가 끝났다. 이제 인터넷 좀 써 보자. 이건 뭔가. 광고까지 봐줬는데 인터넷이 안 된다. 사기당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놈에게 당했다.


다시 고민의 시간을 갖는다. 시간을 보니 1시간은 지난 것 같다. 아메리카노 얼음이 다 녹았다. 심각하게 한 잔을 더 주문할 것인가 고민한다. 이번에는 꼭 영수증을 챙기자. 비밀번호도 꼭 기억하자. 아, 그런데 배가 고프다. 일단 밥부터 해결해야겠다. 혼밥 1 레벨도 쉽게 도전할만한 식당이 어디에 있더라.


백수의 아무말 대잔치 끝.



https://brunch.co.kr/@futurewave/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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