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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Feb 24. 2016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사진 출처 : 교보문고 Ebook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작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작품으로 1882년에 발표되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7가지 단편으로 구성되어있는 이야기 중 첫 번째 편이다. 소박한 가족과 사람 간에 벌어지는 초현실적인 이야기 속에 근원적인 사랑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비록 종교의 색이 가미가 되었지만, 순수한 사랑 희생, 헌신, 인간이라면 마땅 추어야  도리, 바른 마음, 선함 등의 단어를 떠올리도록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불과 1년 전 까지만 해도 직업과 연관되어있는 프로그래밍 관련 도서에만 집중했다. 나의 인생에서 읽는 것이라는 '책'에는 오직 컴퓨터와 씨름하는 프로그래밍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대문호의 유서 깊은 고전 문학작품들을 잊은 채 살았다는 걸, 이제야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고전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읽다>에서 작가 김영하가 40의 나이를 먹고 나서 고전을 읽기 시작한 것처럼, 나 역시 40을 넘어선 이후에 고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김영하는 고전을 읽으면서 오래된 작품들이 지금까지 오래도록 사랑받는 신선한 이유를 깨달았으며, 모든 고전의 이야기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고전에 대하여 <인문학 공부 법>의 안상헌 작가는 '철학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탐색하고, 문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라고 얘기했다.

 

고전을 통해서라면, 오래도록 인간의 내면을 성장시켰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현재는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갖춰나갈 수 있는 토대를 고전 속에서 발견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비록 짧은 일상 속의 환상 같은 이야기였지만, 사람 마음속에 담긴 사랑과 사람 간의 따스한 정, 오직 인간만이 품을 수 있는 영롱한 맛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톨스토이의 짧은 단편 이야기 중, 순수한 종교적인 관점으로 사람들 마음속의 따뜻한 사랑과 용서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버려진 천사도 들어갈 수 없는 폐쇄적인 교회의 문이 상징하는 것은 소외받은 사람들을 홀대하는 당시 교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도 있다. 많은 것을 소유한 부자만이 넓은 교회의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당시 무거운 사회성을 반영한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농가 주택에 세 들어 살고 있으며 2년 동안 돈을 모아봤자 모직 외투 하나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부부가 주인공이다. 바느질로 겨우 버텨가며 입고 있는 낡은 누더기 같은 모직 외투가 겨울을 나기 위한 그들이 소유한 마지막 물질적인 자산이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자신이 가진 물건 중 가장 소중한 것조차 내어놓길 주저하지 않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과 그의 아내의 따뜻한 이야기에 마음을 불쑥 차오르게 하는 행복감을 선물 받았다. 물질적으로는 초라하지만 신에 대한 믿음으로 꽉 차있는 사람의 나눔, 보잘 것 없는 사람이 가진 것의 전부를 내어놓는 순수한 이야기를 통해, 소유와 욕심에 집착하고 사랑의 감정이 메말라 버린 현대인들에게 반성을 안겼다.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담겨있는 아름다움의 근원인 사랑의 감정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은 신이 가르친 것이 아니며, 물질적인 단위로 환산이 불가능한 오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고 스스로 생산해낼 수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20 코페이카마저 보드카에 몽땅 써버릴 만큼 낙담했던 주인공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업신여기고 있다고 생각한 초라한 구두 수선공이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양심의 목소리를 거부하지 못하고 버림받은 천사를 사랑으로 감싸 안았다. 그의 아내가 얘기하는 남편은 이런 사람이었다.


"모피 장수에게 속지는 않았겠지? 사람이 워낙 어수룩해서 말이야.
남을 조금도 속일 줄 모르고 대신 어린아이에게도 속는  사람이니"


가진 건 없지만 신에 대한 믿음에 거짓이 없으며, 늘 마음속은 선량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남들을 도우려고 하는데 왜 남들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걸까요?"

 

그들은 여유가 없어도 남들을 도우면서 살고 있었다. 




작가인 톨스토이는 천사 "미하일"을 통해 세 가지 질문을 제시하고 미하일이 얻은 정답은 아래와 같다.

 

1.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의 내부에는 신의 심성과 똑같은 사랑이 있다. 다른 사람을 아끼고 가여워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랑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이 항상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2.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이 사람은 일 년 후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오늘 저녁까지도 살지 못한다는 사실은 모르는구나" 신은 인간들이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하였다. 오늘 저녁에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내일의 욕심에 집착하고, 확실하지 않은 먼 미래를 투자하며 영원한 삶을 꿈꾼다. 삶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단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스스로에게 제기하고, 무엇이든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다.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자신의 배로 낳은 자식도 아닌 남의 아이들을 가엾게 여기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으로 그들을 받아들였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걱정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사실, 천사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앞날을 고민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가던 남자와 그의 아내의 마음에 '사랑'이 있어 그를 긍휼히 여겼기 때문이다.

 



인간 한 명은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서로 소통하며 살아간다. 절대 혼자서는 이 험한 세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가 없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돈?, 성공?, 명예, 물질적인 보상 따위들은 아닐 것이다. 형태는 정확하지 않지만, 추상적인 모델로 내가 그려보는.. 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이유 중, '단언코 이것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바로 '사랑'에 대한 믿음이다. 부모, 형제, 부부, 직장 모든 관계에서 핵심은 사랑이다. 미움, 의심, 질투, 경쟁과 같은 불순한 마음이 아닌, 인간의 유전자에 오래도록 영롱하게 새겨져 있는 사랑이다. 내가 지칠 때, 누군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아직까지 밑바닥에 꺼져갈 듯 희미하지만, 분명 그 짧은 기억이나마 남아있을 거라고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랑' 말이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단순하게 부모로부터 삶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살아가는 단순한 이유일 수는 없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태어났기 때문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할 수 있으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계속적으로 던질 수 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끝없이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배고프면 음식을 찾는 기본적인 욕망만으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으로서 살아있는 것, 삶의 의미, 삶을 살기 위한 이유를 찾는 과정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만이 유일무이하게 무한한 능력을 가진 절대자로부터  부여받은 귀중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 사람은 분명, 언젠가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에 가깝게  접근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숨을 멈추는 마지막 그 날까지는 말이다.


인간에게 허락된 삶은 채 100년이 되지 못한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그리고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자신의 인생이 몇 천년 동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삶이 무한할 것이라는 착각은 내일 삶이 종료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덜어내기 위한 자기 위안이자,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삶이 유한하기에, 삶이 대단히 짧기 때문에 그만큼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우리가 악전고투하며 인생을 사는 참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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