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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11. 2019

나도 시인이다.

장기 프로젝트 오픈

마감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공대생의 심야서재’입니다. 오늘은 장기 프로젝트 모임을 알리고자 글을 씁니다. 프로젝트의 가칭은 ‘나도 시인이다’입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모임의 목적은 아주 간단합니다. 시를 쓰는 게 전부입니다. 저는 시인이 아니지만 가끔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시를 쓰는 이유는 뭘까요? 시는 인생을 압축시킨 공간이며 인간의 욕망을 담는 그릇입니다. 시는 억압된 일상에 해방감을 안겨 줍니다. 시는 나약한 인간을 떠받치고 상처 받은 영혼을 위해 슬픔을 노래합니다. 


시는 각자의 삶을 해석한다고 믿어요. 여기서 해석은 슬픔과 치유에 기반합니다. 현대시가 복잡한 이유는 시를 읽는 사람의 처지에서 해석하기 위함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시에 정답은 없겠죠. 각자가 해석하기 나름이니까요.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그냥 종이에 생각을 담으면 됩니다. 단순하게 생각을 담아 쓰면 된다, 라는 말 외에 다른 문장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마음속에서 누구나 등단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입니다. 제도권 하에서 시인으로 인정받는 길이야말로 시를 쓴다는 의미를 더 결속시켜줄 테니까요. 


거의 1년 넘도록 시 필사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백 편의 시를 만났고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을 필사했습니다. 필사하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매력이 시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필사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을까요? 관점을 바꿔 볼까요? 대체 잘 쓴다는 의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문학 작품 100편을 읽는다고 역사에 남길 단편 소설 하나 조차 쓸 수 없는 것처럼 읽는 것만으론 시인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속 쓰는 게 아닐까요? 악착같이, 또 절실하게… 물론 모든 글이 그렇듯 시도 누군가에게 보여 줘야 합니다. 블로그든 브런치든 아니면 가족이든 보여 줘야 늘 계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필사는 시를 쓰기 위한 아주 기초적인 단계가 아닐까요. 그다음 단계는 얼굴이 벌게지는 경험을 매일 하는 것입니다. 계속 쓰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얻고 다시 고쳐 쓰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우리 모두 시인이 되어 봅시다.


‘나도 시인이다’ 모임의 목적은?


함께 시 쓰는 시간을 갖습니다.

시 쓰는 훈련을 경험합니다.

시인이 되기 위한 쓰기 근육을 기릅니다.

독립출판으로 시집을 출간합니다.(희망하는 사람)

등단에 관련된 정보를 공유합니다.

문예 공모전 또는 신춘문예에 도전합니다.(서로의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나도 시인이다’ 구체적인 훈련 방법은?


각자가 쓴 시를 읽고 느낌을 전달합니다.(건전한 비평)

산문을 시로 바꿔 봅니다.

유명시를 이어 써 봅니다.

릴레이 시 이어가기(함께)

게릴라 시 쓰기(특정 주제)

자신의 시 낭독(녹음)해서 올리기

그림 보며 시 쓰기

음악 듣고 시 쓰기

시작법에 관한 책을 같이 읽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에 비평을 전달합니다.


경고


저는 시인이 아닙니다. 시가 좋아서 시를 쓰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시 쓰는 기술을 가르쳐 드릴 수 없습니다.

시 쓰는 걸 배우고 싶어서 모임에 참여하시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은 시인이자 독자가 됩니다.

쉽게 생각하고 모임에 참여했다, 쉽게 포기하는 분은 신중하게 신청 바랍니다.

말없이 퇴장하시는 분들 영원히 공심재 모임에 참여하실 수 없습니다.(매너 지켜주세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신중하게 신청해주세요.(무료 모임입니다.)


모임 참여 방법


1. 매주 두 편 이상의 시를 쓰고 ‘공심재’ 카페에 업로드합니다.

2. 댓글로 시에 피드백을 남깁니다.(독자로서, 느낌을 중심으로 비평 전달)

3. 온라인 합평 진행 여부는 참가하시는 분과 논의 후 진행하겠습니다.

4. 시를 다시 고쳐 씁니다.(피드백 반영, 퇴고)

5. 브런치나 블로그에 발행합니다.

6. 등단에 도전합니다. (공모전 정보 공유)


일정


모집 기간 : ~12/31(화)까지

모임 시작 : 1/6(월)~


신청은 아래 주소에서


마감되었습니다.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
잘 들어, 마리오, 
난 내가 쓴 글 이외의 말로 
그 시를 표현하지 못하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상황에 맞게… 
직접 경험해 보는 것뿐이야. 

- 파블로 네루다 (영화 일 포스티노 중에서)


시에 대한 공심의 생각


시는 들판에서 혼자 슬피 우는 존재에게 위로가 된다. 자아는 각성을 거듭하고 흔들리던 영혼은 절규 끝에 안식을 찾는다. 그러다 평화의 협정이 깨지고 지각이 무너지는 현상도 겪는다. 그것은 자유를 얻고 싶은 인간의 관념적인 욕망의 결과다. 


시인은 무너진 잿더미 한가운데 서서 쏟아지는 슬픔과 질시와 비웃음의 낱말을 듣는다. 비웃음은 우습게도 나에게 자양분이 되고 기틀이 되고 주춧돌이 되어 삶을 버티도록 응원한다. 일상은 관념의 세상에서의 은둔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을 억제하고 현실적인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 


의연하게 쓰는 것을 지속해야 한다. 시는 어둠을 쫓고 죽음의 사자를 물리치며 음울함을 상징하는 포식자의 횡포를 극복하게 만든다. 시는 어둠을 거부하고 그곳에 숨지 않는다. 시가 어둠을 부끄러워하지 않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 삶의 진실, 영혼에 대한 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사람은 그 맛에 중독이 된다. 중독될수록 현실에 대한 부정은 시에 단맛을 안긴다. 따라서 시를 쓰는 사람을 위로받을 필요도 박수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시는 움직이는 삶을 기록하는 하나의 역사적 산물일 뿐이다. 그 본능이란 것은 시인이라 불리는 자에게 운명으로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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