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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r 09. 2020

가시처럼 예민하게

일상 에세이


1

《한 권으로 끝내는 노션》의 서평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블로그 이웃분이신 '올바로움(김선우님)'님이 서평을 올려주셨는데 과분한 말씀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다. 내가 그리 유명인은 아직 아닌데... 감사한 마음, 과분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이 동시에 찾아왔다.


이석현 님은 사실 블로그 '공대생의 심야서재'로 더 유명하신 분입니다. 사실 이 책을 사기 전에는 몰랐는데, 저랑 블로그 이웃이셨어요. :) 역시 블로그를 하다 보니 실제 이름보다는 닉네임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아주 평범한 사람도 글을 쓰고, 작가가 되고,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분이시죠. 역시 블로그를 한 번 들러보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올바로움의 북스테이


2

시 필사 모임 11기가 종료됐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겨울이었지만, 채팅방은 더 훈훈한 계절 그 자체였다. 긍정적인 분들에게 커다란 힘을 얻었다. 모임은 내가 만들었지만, 역시 소유는 참여하는 분들에게 있다. 어떤 의미를 찾게 할 것인지, 나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답은 여러분이 찾을 것이기에.


3

108일 글쓰기 Phase-2가 종료되고 휴식기를 맞았다. 미션을 완수하신 분, 아직 도전 중인 분, 모두에게 사정과 의미가 있으리라. 결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과정에서 어떤 의미와 보람을 찾을 것인지,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응원을 보내 드린다.


4

나는 여전히 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멈춘다는 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할 테니까. 나는 스스로 세워둔 차단 벽을 허물어뜨리는 중이다. 무너뜨리는 일, 전복시키는 일, 해체하는 일, 완벽하게 나를 버리는 행위로써 나는 무대 뒤에 선 자가 아니라, 전면에 부각되는 사람으로 변신해나간다.


5

나는 가시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기만 했다. 가시로 온통 내 삶을 에워싸았다. 나는 무탈하고 안전하게 미래를 향해야 했으므로 그 누구도 내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말하자면 나는 가시를 세우는 행위로 세상과 격리되려 작정했던 것이다. 환자도 아닌데, 나는 왜 세상과 멀찍이 떨어지려 했을까. 습관이었을까, 나약함의 발로였을까.


가시를 온몸에 바르고 다니는 사람은 상처에 예민하다. 작은 쓸림에도 유난을 떤다. 상처는 원래 아리고 가끔은 피도 나는 것인데, 상처가 나면 통증을 느껴야 정상인데, 그것이 아무는 과정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느 날부터 가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가시는 새싹처럼 돋아났으나 뿌리처럼 단단하게 범위를 넓혀나갔다. 더 완벽하게 보호하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촘촘하게 가시는 자라났다.


아주 어린 시절, 그러니까 10살이 채 안 된 날의 기억이다. 겨울이 끝나가는 시기쯤 되었겠다. 동네 아이들 중 모험 정신이 투철한 몇 녀석을 뽑아 여정에 나섰다. 외갓집이 동구릉 근처였는데, 겁도 없이 산 하나를 넘어 릉에 가보겠다는 심산을 품은 것이었다. 낮고 평탄할 거라 예상했던 검암산은 높고 길기만 했다. 우리는 여전히 작았으므로 큰 덩치를 자랑하는 산 하나를 정복하면 조금 커질 거라 기대했나 보다. 어쩌면 동구릉을 발견하는 것보다 어떤 경계를 넘어서겠다는 의식이 더 확고했을지도.


운 좋게도 산 너머의 동구릉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조선의 어떤 왕이 묻혔는지 역사적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 키보다 몇십 배는 높을 것 같은 위엄에 잠시 제압당한 것이 전부였을 뿐. 왕가의 무덤에서 잠시 방황했으나, 왕의 기억은 쉽게 잊혔다. 집으로 방향을 돌려야 했다. 걸어온 길만큼 다시 회복하면 그뿐이라는 생각과 함께.


겨울산이 늘 그랬듯, 밤은 쉽게 허물어졌다. 길이었던 곳이 어느새 길이 아닌 것처럼 변신하고 말았다. 정상에서 내려가면 집이 나올 것이라 마음을 내려놓았지만, 걱정만큼은 덜어지지 않았다. 내려갈수록 집과 더 멀어졌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골짜기만 계속 이어졌다. 더듬거리다, 헛짚고 미끄러지길 수차례 반복했다. 아래로 아래로 계속 미끄러졌으나 집으로 가는 길은 더 멀어졌다. 어느 순간 익숙했던 길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겁이 났고 배가 고팠으며 무엇보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찾아오니 더 춥게 느껴졌다. 우린 10살 배기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가시덤불이 나타난 것은 어둠이 사위를 둘러쌀 무렵이었다. 가시는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었으므로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옷에 생채기를 내거나 때로 손가락을 따갑게 찔렀다. 손에 긁히다, 가끔 가시는 몸통에서 분리되는 시련을 겪었다. 손등이나 손바닥에 박힌 가시를 빼어낼 때마다, 내 목소리엔 가시처럼 날카로운 것이 담겨 있었다.


영역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가시나무의 적의, 가시에 찔리면서도 계속 버둥거리며 어떤 영향권에서 탈출하려는 나의 몸부림, 그러니까 가시나무도 나도 각자의 생을 삐죽하게 세워둔 셈이었다. 눈앞에 가시의 거친 행렬이 계속될 것을 알면서도, 가시의 경고 메시지를 알면서도, 우리는 서로 죽지 않기 위해 생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가시는 우리에게 가끔 놀잇감에 불과했다. 가시 하나를 온전하게 뽑으면, 그것을 코에 붙여놓고 우린 코뿔소가 되었다고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말하자면 우리는 앞으로만 돌진하는 겁을 상실한 동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가시는 어느 곳에서나 뽑히고 부러지는 신세일 뿐이었다. 한없이 나약했던 가시는 코뿔소가 되거나 낙엽처럼 아이들에게 쓸려 다녔다. 존재감이 없던 가시가 어둠과 함께 시야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밤이 될수록 가시들은 더 똘똘 뭉치는 사이가 되었고, 우리는 한없이 흩어지는 무리가 되었다. 과연 우린 가시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집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을까.



6

내가 좋아하는 곡 멋대로 소개하기

조성모 - 가시나무(원곡 : 시인과 촌장)

https://www.youtube.com/watch?v=s_vBf5Do-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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