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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15. 2020

수고스러움을 감당하기, 권태를 인정하기

날이 더워질수록 운동하기가 점점 귀찮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욕은 여전히 줄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먹고 후회하고 다시 먹고 후회하는 현상을 오늘도 반복한다. 반복하는 후회의 숫자만큼 몸무게는 보태어지고 때로 덜어지는 걸 반복하겠지만 멈추지 못한다.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건 셀 수도 없는 용기의 감정을 부른다. 말하자면 운동은 수고스러움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과 엇비슷하다. 여름이 점점 깊어질수록 그리하여 체력이 나날이 소진되어갈수록, 다이어트가 정상화되어 몸무게가 정상으로 진입해갈수록 수고스러움의 부담도 같이 늘어난다는 사실.


인생은 수많은 수고스러움, 귀찮음, 게으름, 권태와의 싸움이다.


아침 출근, 회사 건물 앞에 도착하니 약 10여 분의 여유가 잠시 주어졌더랬다. 유난한 더위를 견디기 어려워, 그 후텁한 기운을 사그라뜨릴 수 없어 커피 전문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카드를 내밀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잠시 어색한 시간, 주인과 눈을 잠시 맞추고 아침에 나누는 그런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꺼내볼까 고민하려던 순간, 눈앞에 커피가 바로 놓였다. 카드 승인이 끝나고 내 손에 다시 카드가 쥐어지기 무섭게 서늘한 커피 한 잔이 배달된 것이다. 역시 속도의 시대다. 이제 머신에서 내려주는 커피도 인스턴트 시대에 맞게 소비자의 조급한 트렌드에 발을 맞춰주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분석하길 좋아하고 추론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 직업병이라고 해두자. 카드 승인이 떨어지고 커피가 곧바로 나온 거라면, 분명 미리 커피를 준비해놓은 게 맞다. 아침이면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릴 테니까, 기다리는 손님들의 시간을 절약해 주기 위해 커피를 미리 내려놓은 게 틀림없다. 얼음이 탱탱하게 살아 수면 위에 동동 떠다니는 걸 보면 방치해놓은 시간이 그리 길진 않을 거다. 그래 이 정도는 수긍할 수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커피 주문한지 경력이 몇 년인데, 원두커피집에서 미리 내려놓은 커피를 내어준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행위라고. 손님이 주문하고 나서, 비로소 머신을 조작하고 천천히 커피를 내리기 시작하여 손님의 손에 컵을 쥐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그렇게 수고스럽다고? 미리 용기에 얼음과 커피를 띄워놓고 마치 방금 나온 것처럼 시위하는 것, 이건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해보니 그는 일부러 시간을 살짝 지체한 느낌마저 들었다. 바로 내어주기에는 그도 미안했을 터, 약간의 시간차를 두면 내가 그런 걸 제대로 직감하지 못하는 무심한 손님이라고 단정 지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예민하고 상황 파악이 빠르고 눈치가 제법 빠른 사람이다. 상황 파악하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그 가게는 커피 한 잔에 1,500이라는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커피를 바로바로 서비스한다는, 말하자면 수고스러움을 감당해가며 친절한 인상을 고객에게 선물한다는 것을 스스로 저버린 셈이니까, 앞으로 내가 가진 불매 리스트에 포함이 될 것 같았다. 나처럼 수고스러움, 귀찮음을 쉽게 간파하는 사람에게 쉽게 지목당할 확률이 높겠지.


나는 커뮤니티 운영자다. 늘어난 모임만큼 오픈 채팅방의 숫자도 증가하고 있다. 잠깐이라도 소홀하면 대화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들이 쌓인다. 운영자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늘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대화에 실시간으로 동참해야 하나? 그들이 남긴 글에 성심성의껏 댓글을 달아야 하나? 대화에 완벽하게 섞일 순 없어도 따뜻한 수고의 한마디라도 던져야 하나? 아니 나에게 주어진 여건하에서 낼 수 있는 모든 부하를 견디어가며, 그러니까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귀찮아지려는 감정을 거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나는 밑단에서 작업들을 펼쳐나간다. 모임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사람들이 인증한 데이터를 누적하여 통계 내고, 다시 통계 데이터를 참고하여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결과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친절하게 그들이 남긴 결과물에 메시지를 남기고. 이런 모든 과정은 수고스러움을 내색하지 않고 귀찮음, 권태로움을 극복하는 걸 포함한다. 매일 수고스러움에 미소를 짓고 귀찮음과 싸운다는 얘기다.


커뮤니티의 운영자도 사람이다. 나도 사람인데 더 게을러지고 싶은 욕망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과 싸워 물리치고 결국 이겨내는 거다. 본능을 억제하고 더 부지런하게 오늘처럼 다이어트를 위해 땀을 빼듯 귀찮음을 쏟아가며 달려가는 거다. 


결국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널뛰듯 때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제어하지 못하는 감정의 파도, 그 감정이 바닥을 칠 때 그러니까 게으름으로 접어드는 순간을 인지해야 한다. 상황을 인지하게 되면, 개선할 여지도 찾게 된다. 물론 그때 용기가 필요하긴 하다. 극복하려면 일단 용기가 충분히 충전되어 있어야 할 테니까.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 추다'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나는 권태롭지 않기 위해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니 내 반경 1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수고스러움, 권태, 게으름, 귀찮음 들을 인정한다. 내가 열심히 사려하는 것, 말하자면 내 삶의 반경에서 늘 조급하지 않게 또 다정하게 사람들에게 다가서려는 것은 이 복잡한 감정들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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