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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Oct 16. 2019

디지털 시대의 허무함

내 추억 다 돌려내...

여름 내내 한반도를 비켜 지나가던 태풍이 오랜만에 내륙 깊이 관통하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겪어보는 거센 빗줄기와 강한 바람 속에 각종 미디어에서는 외출을 자재하도록 권장하고 있었고 덕분에 특별한 약속도, 수업도 잡지 않은 나는 오랜만에 집에서 컴퓨터를 켰다.

근데 왜 그랬을까, 평소에는 거의 켜지 않고 패드나 보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컴퓨터를 다 켜고 있었으니...

결국 이날은 결과적으로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일어나 컴퓨터 모니터를 보니 뭔가 싸한 느낌의 창이 떠 있었고 처음엔 그저 뭐 별일 아니겠지 라며 창을닫고 컴퓨터를 뒤적이고 나니 이게 별일 아닌 것이 아니었다. 


랜섬웨어 : ‘몸값’(Ransom)과 ‘소프트웨어’(Software)의 합성어다. 시스템을 잠그거나 데이터를 암호화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 뒤, 이를 인질로 금전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회사 보안 메일이나 커뮤니티 상에서 남들이 걸렸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던 그 랜섬웨어에 걸려버린 것이었다. 황급히 주섬 주섬 폴더를 열며 파일들의 상태를 검사했는데 특별한 예외는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 여행 사진이나 영상, 중요한 데이터를 백업해놓은 자료 등 모든 파일명이 변경되고 열 수 없는 상태로 변경되어 있었고 남는 건 뭐 어딘가 접속해서 금전을 요구하는 readme.txt 파일 뿐이었다.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걸 느끼며 내 몸에 방어체계가 즉각 반응하듯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의 사진은 이제 다 어찌해야 하나... 그 흔한 클라우드 백업도 하지 않고 너무 안일하게 살아왔던 순간을 후회하기에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순간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고 또 어처구니없었다.

“디지털 시대의 허망함”

오늘의 상황을 들은 지인을 통해 듣게 된 말인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쉽게 찍고 저장하고, 쉬운 만큼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또한 한 순간이 되었다. 과거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한롤 안에서도 특별히 맘에 드는 사진만을 골라 인화해서 앨범에 보관하던 시절과는 너무도 다른 시절을 살고 있는 탓일 것이다.

누군가와 소통의 기억도 비슷한 상황이다. 과거 종이 편지를 통해서 주고받던 기억은 전자편지, 즉 이메일로 대체되었고 컴퓨터 메신저 시대를 지나 지금은 핸드폰 메신저로 대부분 소통하고 있다. 이것도 물론 백업을 하고 어딘가에 남겨놓으면 보관할 수 있을 테지만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새로운 핸드폰을 구매한다면 없어지는 내용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남겨놓을 순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나하나 정말 의미 있는 것들을 보관하고 남겨놓는 작업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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