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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Oct 25. 2019

글쓰기의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다

이 책 한권이 갖고 싶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호기롭게 맘을 가다듬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오늘 글쓰기의 주제는 뭘로 해야 하나 생각을 하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작 글쓰기 주제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얀 화면에는 그저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고 브런치 사이트의 글쓰기 초기화면으로 나오는 '제목을 입력하세요'라는 제목 입력 부분에 글씨는 나의 목을 죄어 오는 것 같았다.


우연한 기회에 등록하게 된 에세이 글쓰기 수업을 통해서 정말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글쓰기란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누군가 인생에 버킷리스트를 물어볼 때면 너무도 당당하게 "저는 제 이름으로 책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라고 항상 그 리스트 중 한 가지로 대답하곤 했었다. 그 장르가 소설이 될지, 아니면 에세이가 될지, 그 어떤 결정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그저 책을 한 권을 내보는 것, 피천득 작가의 수필 '은전 한 닢'에 나오는 은전 한 닢을 얻고자 했던 거지처럼 그저 그렇게 자신만의 책 한 권이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여 수업을 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보면서 너무나도 오랜만에 글쓰기란 걸 해봤던 기억이 난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자소서나 열심히 써봤지 그 이후엔 그저 회사 보고서를 만드는 일 외에 특별한 글을 써 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기에 내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글들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뒤 해당 강의에 대한 한줄평으로 나는 "글쓰기 수업은 나에게 '낭떠러지'이다"라고 표현했다.


흔히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그때 나오는 낭떠러지, 나에게 글쓰기 수업은 그랬다. 저 발끝 밑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던 막연한 곳으로 해당 수업의 강사님은 나를 거침없이 밀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시도 조차 하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글쓰기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려갔다. 덕분이었을까 떨어지기 시작하니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써보고 글에 대한 평가를 받고 그동안 머릿속에만 맴돌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구체화되어 세상 속에 나타나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떨어지는 중간중간 나무뿌리에 치이고 튀어나온 돌부리에 튕겨 이리저리 나뒹굴 수밖에 없다. 초반의 가속도는 사라지고 어느새 중력도 무시한 채 멈춰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제 겨우 초보 글쓰기 중인 사람이 이렇게 어렵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사치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될 만큼 하찮은 모습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그 끝에 다다랐을 때 빛나는 은전 한 닢처럼 나만의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오늘도 그렇게 읽고, 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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