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던가 해야지 원...
"사장님 취하셨어요?"
갑자기 사장님 취하셨냐니 이게 무슨 소리인 건가?
지난밤 회식과 길었던 술자리로 인해 비몽사몽 뛰쳐나온 아침 출근길이었다. 지하철에 서 있는데 문득 지하철 안에 붙어 있던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해장 같은 건 할 겨를도 없어 메스꺼운 속을 부여잡으며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보니 "사장님 취업하셨어요?"라는 4~50대 자영업자들의 재취업에 관한 광고였었다. 순간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취업"에서 "업"을 빼버리니 취하게 되는구나... 이래서 취업해서 직장생활을 하면 취하게 되는 건가 싶었다.
처음 직장에 취업하고 나서는 회식자리가 참 많이 있었다. 그 당시 취업과 함께 고향을 벗어나 타 지역에 홀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회식자리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술을 먹을 기회도 많이 있었다. 애초에 술을 못 먹는다, 아니면 술을 아예 안 먹겠다며 선을 그었어야 했었다. 원래 술을 잘 먹는다거나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안 먹지도 않았던 터라 그냥 권해주는 술을 조금씩 먹다 보니 가끔은 감당 안 되는 수준에 이르기도 했었다. 지금이야 사회 분위기도 바뀌고 술을 권하는 문화도 많이 사라졌지만 그 당시 신입사원이 무슨 용기가 있었겠는가, 그저 회식 자리의 분위기에 이끌려 덩달아 건배를 하고 잔을 비울 뿐이었다. 다만 그렇게 술은 마시기 싫었지만 가난한 대학생 시절에는 잘 먹어보지도 못했던 맛있는 안주들을 맘 편히 먹을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직장생활에 있어서 회식 문화는 땔레야 땔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특히나 음주가무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에 1차, 2차, 3차로 퇴근 후 새벽까지 이어지는 길고도 먼 회식의 여정을 이어 나간다. 직장 상사는 부하 직원들에게 술을 권하며 자신의 과거 이야기, 흔히 "라테는 말이야~" 시리즈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부하 직원들은 그 자리에서 또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건배를 하고 잔을 채우며 상사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혹은 동기들끼리 만나 회사나 직장상사 뒷담화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사무실 안에서 어색하게 일만 하던 남녀들 간의 썸을 이룰 수 있는 자리로써 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회식이 체질에 맞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며 회사에서 아침부터 퇴근 시간까지 봤던 사람들과 또 술자리까지 하고 싶겠는가. 그저 마음 맞는 몇 명의 사람들과 모이는 자리가 아니라 단체 회식이라면 더더욱 그 안에 불편한 사람 한 두 명쯤은 무조건 있을 텐데 말이다.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거나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친구들끼리 어울려 회사 혹은 상사 뒷담화을 하며 술 한잔 하는 게 더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지난밤 회식에는 '라테' 이야기를 하는 직장 상사도 없었고, 그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맘 편히 술 한잔 하는 자리였으니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나란히 줄 세워 놓은 빈 술병의 숫자도 길어져만 갔었다. 그렇게 즐거웠지만 힘겨웠던 술자리가 끝나고 다음날 아침 정신없던 출근길에 내 눈에 처음 들어왔던 건 결국 "취업하셨어요?"가 아닌 "취하셨어요?"라는 광고 문구였다.
"술을 끊던가 해야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