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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Oct 26. 2019

나는 연극을 보러 간다

흐릿해지는 내 삶에 생동감 덧칠하기

최근에는 교통이 발달해서 지방에서 서울을 가는 데 있어 큰 불편함도, 시간도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 어린 시절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필요하고, 서울 한번 가는 게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을 만큼 큰 일이었고 특히 가난한 학생 신분으로는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지하철로 연결되지 않은 곳에서 서울로 간다는 건 분명 심리적, 물질적인 벽이 존재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시절까지 지방민으로 살아왔던 터라 서울 생활, 특히 서울의 문화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대학로, 충무로, 예술의 전당 등 서울에 살면 연극도 보러 다니고 공연도 보러 다니고 문화생활을 즐기겠어! 라며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동경과 희망을 가지고 살았었다. 하지만 정작 서울에 살고 있을 때 주말의 삶이란 문화생활과는 그렇게 거리가 가깝지 않았다. 매주 보러 다니겠다던 연극은 정말 가끔 특별한 기회가 있을 때나 가게 되었고, 그나마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더 자주 갈 수 있었던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형 스크린과 각종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영화들과 다르게 대학로 연극은 대부분 소극장 단위로 이뤄진다. 등장하는 배우는 5~6명 정도로 각자의 역할을 하는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1인 다역으로 그 안에서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는 배우들도 있다. 최근에는 누워서 보는 영화관도 생겨났다고 하던데 소극장은 그렇게 누워 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앞뒤 좌우로 촘촘히 붙어있는 자리에 그나마 등받이라도 있어주면 다행인 곳이 많았다. 하지만 소극장 연극이 갖는 매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연극 시작되고 나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배우들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첫 등장을 하며 관객들의 웃음과 함께 호응을 유발해 내는 배우, 그런 배우의 표정을 볼 때면 나 스스로의 표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살아가고 있나, 내 표정은 저렇게 살아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배우들의 표정을 보며 그들의 살아있는 표정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었다. 사실 직장에서 일을 한다거나 혹은 지인들을 만난다거나,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밖을 돌아다니거나 할 때 사람들의 표정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연극 무대만큼은, 물론 그 자체도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 한 부분일 테지만,  배우들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관찰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그렇게 배우들의 연기와 표정에 흠뻑 빠져들어 연극을 보고 나면 삶에 대한 에너지를 수혈받는 느낌이 든다.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을 하고 회사에서 모니터를 보며 업무를 하고, 타 부서와 의사소통을 하는 중에 내 표정은 대부분 굳어 있다. 특히 모니터 속 이메일을 보거나 보고서를 쓰고 있을 때 표정이 살아있을 리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연극배우들에게도 연극이 끝나고 난 후의 삶은 무대 위에서의 삶과는 또 다른 모습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연극 무대 위에서 내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도 한 없이 당당하고, 각자의 역할과 내용에 따라 울고 웃고, 평소 보통의 사람들이 드러낼 수 있는 희로애락의 200% 이상을 표현한다. 흔히 너무 과장되지 않냐는 말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뭐 어떤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모니터 속을 들여다보며 흐릿해지는 자신의 모습보다는 차라리 남들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두배는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오늘 연극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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