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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Oct 27. 2019

맛있는 거 사와

기다림의 설렘도 배달이 되나요?

"맛있는 거 사와~"

길을 걷다 우연히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엄마에게 아이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순간 "맛있는 거 사와" 이 말은 아직도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부모님이 외출하실 때나 혹은 집에서 외출 중이신 부모님의 별일 없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종종 "잘 다녀오세요" 라거나 다른 인사말 대신에 "맛있는 거 사 오세요~"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비교적 어린 나이였고 용돈을 따로 받거나 하지 않았으니 뭔가 간식거리가 먹고 싶다고 마음껏 사 먹는다거나 하기 어려웠었다. 그렇다고 집안에 항상 간식거리가 쌓여 있거나 하진 않았으니 저런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는 외출하신 부모님이 돌아오시길 기다리는 맘과 더불어 간식도 함께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집에 벨이 울리면 반가움은 두 배가 되어 현관으로 달려갔었다. 하지만 항상 행복한 결말만 있을 수 없는 게 인생이었으니, 부모님께서는 매번 간식을 사 오시진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러실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매번 간식으로 사러 가실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딱히 뭔가 정확히 사다 주라며 말하지도 않고 그냥 "맛있는 거"라고 이야길 했으니 매번 선택에 고민을 드렸던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은 매번 기대를 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었다. 핫도그나 붕어빵 같은 간식을 손에 사들고 오시는 날이면 한없이 기뻐했었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올 때 메로나"라는 문장이 인터넷에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가 있었다. 택배를 전달하겠다며 연락을 한 택배회사 직원에게 문자를 잘못 보내서 택배 직원이 택배와 함께 메로나를 사 들고 온 상황을 표현했던 글이었는데 문자를 잘못 보낸 것도 보낸 거지만 정말로 메로나를 사 온 택배회사 직원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니면 집에 있을 때면 누군가 외출하거나 혹은 외출하고 돌아오는 상대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싶어 지는 걸까? 이런 쓸데없는 궁금증들이 머릿속에 맴돌기도 했다.


나이를 먹고 독립하여 살아가던 중에는 직장이 있으니 돈도 있었고 먹고 싶은 간식을 사 먹는 데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삶이 되었다. 또 최근엔 정말 다양한 배달앱들이 등장해서 웬만한 건 다 배달이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 배달해서 먹을 수 있었다. 편의점 메로나도 배달해 달라고 하면 해주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시절 "맛있는 거 사 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외출하신 부모님이 돌아오기만을 기대하던 설렘은 잊혀진 지 오래인 것 같다. 길에서 문득 들려온 아이의 말이 부러웠던 건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닐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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