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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Oct 31. 2019

나에게 글쓰기는 따뜻함이길 바란다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라며

“이거 너 입어~, 아냐 괜찮아 네가 입어~”
아침저녁으로 급격하게 커진 일교차 때문이었을까? 늦은 저녁 퇴근길 지하철 출입구를 빠져나가기 전 어느 커플의 외투를 사이에 두고 펼치는 애정행각(?)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여름 찜통 같았던 더위도 어느새 지나갔다. 이제는 반팔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밖으로 나가기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고 여름내 차가운 에어컨을 쌩쌩 틀어주던 버스 안에서는 따뜻한 히터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새 차가워진 날씨 덕분에 사람들의 옷차림은 급격히 변하였다. 얇은 외투 대신에 두툼한 코드가 등장했고, 셔츠 위엔 니트를 겹쳐 입게 되었다. 얇은 패딩을 입은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어릴 적 누군가 "너는 어느 계절이 좋아?"라고 물어볼 때면 "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겨울이 좋아!"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따뜻함의 대명사인 봄날을 놔두고 겨울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너무 중2병 같은 대답이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그 이유를 생각하면 더 가관이었다. 한여름에 날씨가 더울 때는 절대 따뜻함을 느낄 수 없다며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이불속의 따뜻함, 난로의 따뜻한 온기, 두툼한 외투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무더위도 영원하진 못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모두 다 타 죽는 게 아니냐며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땀을 흘리고 있었던 여름날은 어느새 과거가 되어버렸다. 어느 여름날처럼 뜨거웠던 커플 간의 사랑이나, 혹은 무언가에 흠뻑 빠져 들어서 온갖 정성과 시간을 쏟았던 열정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식어 갈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해지고 편해지면 흥미를 잃어버리거나, 욕심 때문에 힘들고 만족하지 못할 때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9월의 어느 날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나에겐 작가라는 호칭이 주어졌다. 그리고 시작된 사소한 고민들, 작가의 이름은 뭘로 하지? 본명을 사용해야 하나? 닉네임을 써야 하나? 프로필 소개는 어떻게 작성하지? 사진은 뭘 넣어야 하나? 내 모습을 드러내도 좋은 걸까? 이런저런 고민들로 한 달 가까이를 날려 버리고 말았다. 다시 10월부터 시작이라는 다짐과 함께 시작된 브런치에 글쓰기는 어느새 한 달을 채우고 막바지에 다다랐다. 


더울 때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따뜻함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뜨겁다고 느끼는 온도는 따뜻하다고 느끼는 온도보다 높다. 따뜻함은 그 안에 남아있지만 열기에 가려져서 눈에 띌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돼버린다. 하지만 주변의 온도가 낮아지면 어떨까? 계절이 변해가듯 날씨의 변화에 따라 뜨거움은 차가움으로 바뀌게 되고 그에 반해 따뜻함이란 느낌은 더 선명해질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란 따뜻함이길 바란다. 뜨거운 열정 안에서도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혹은 시간이 지나 열정이 식어 주변 온도가 낮아졌을 때에도 더 선명한 느낌으로 남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길 바란다.


문득 스쳐 지나왔던 지하철의 커플에게 이제 곧 지금보다 더 추워질 텐데, 서로에게 외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갖춰 입고 오래오래 따뜻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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