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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Nov 02. 2019

포기가 꼭 나쁜 건 아니었어

어느 여름 계절학기를 보내며

“매앰 매앰 매앰 매앰 매~~~~”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시끄러운 매미 소리와 함께 눈이 떠졌다. 아침부터 쨍한 햇빛이 들어오는 걸 보니 오늘 하루도 매우 더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주섬주섬 가방에 책을 챙겨 넣고 학교로 향했다. 때는 지금보다 한참 오래 전인 대학교 여름학기 시절.


평소 심리학 강의를 좋아하던 중에 해당 과에서 진행하는 전공과목을 여름학기 수업으로 듣기로 하고 강의에 참석했다. 다만 여기에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영어강의였다는 것이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설마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영어로 수업하겠어??”


입학하고 그 전까지 영어 강의라곤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영어회화 수업이나 들었던 나에게 영어강의는 그저 미지의 영역이었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분명 한국어 강의 50%, 영어 강의 50%라는 강의 계획서를 본 것 같기는 한데, 그 강의를 왜 신청했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미지수다.


그렇게 시작한 강의는 첫 시간, 무언가 A4용지를 잔뜩 나눠준다. 분명 뭐라고 적혀 있는데 이게 과연 무슨 말인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그런 말들뿐, 기초 영어회화 수업이나 듣던 나에게 있어 전공과목의 전공영어는 말 그대로 알파벳 그 날것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는 시작되었고 교수님은 영어로 열심히 강의를 하신다. 관련 동영상을 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영상 속에 나오는 한국어가 그렇게 반갑게 들리기는 또 처음이었다. 영상이 끝나고 나니 다시 영어가 귓속에 들려온다. 그 당시 나의 영어실력이란 그저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를 해왔을 뿐이었고 자막 없이 외국 영화를 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강의며 영상이며 이건 모두 자막 없이 외국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첫 수업이 끝나고 그리 길지 않은 고민의 시간 후에 강의 수강 취소를 신청했다. 그렇게 빠른 결정은 바쁠 것 같았던 여름학기를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날의 강의는 결국 그 해 여름학기의 처음이자 마지막 강의가 되어 버렸고,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가끔 생각한다


"휴... 빠른 포기가 꼭 나쁜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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