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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Nov 17. 2019

김치에만 숙성이 필요한가요? 글에도 숙성이 필요합니다

겉절이 좋아하세요? 묵은지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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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보게 된 홈쇼핑 채널에서는 김장 시즌을 맞이해 김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도 물론 김장을 하는 가정들이 있긴 하겠지만 최근 들어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가족의 규모가 대가족에서 소가족으로 변모하게 되면서 대량 생산을 해야 하는 김장을 하기보다는 김치를 사 먹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대형마트며 홈쇼핑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판매하고 있었으니 김치 시장 또한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루에 한편씩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실 얼마 동안은 이미 그전에 글쓰기 수업에 완성했거나 개인적인 스터디를 통해서 작성해 놓았던 글을 발행하곤 했었다. 이미 작성된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퇴고해서 발행하는 작업이었으니, 여러 번 읽고 또 읽는 과정에서 글을 매끄럽게 다듬으려고 했다. 물론 막 시작단계였고 처음 쓰인 글들이었으니 원래 이상했던 글을 다듬는다고 보석이 되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다듬었다. 그렇게 글을 발행하던 중에도 계속 새로운 글을 써서 서랍 속에 채워 갔고 작성된 글은 적당한 시간을 보내며 퇴고할 수 있는 시간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도 오래가진 못했다. 워낙 가진 밑천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초고를 써놓았더라도 얼마나 써 놨겠는가, 결국 서랍 속의 글들은 모두 바닥이 났고, 며칠간은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퇴근 후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완성한 글은 최대한 여러 번 읽어보고 생각을 다시 해본다고 하더라도 숨이 살아있었다. 마치 방금 막 양념에 버무려 나온 겉절이 같은 느낌의 날것 그대로의 글이었다.


김치에만 숙성이 필요한가요? 글에도 숙성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의 생각과 느낌만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면 숨이 살아있는 거친 글이 탄생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생각을 통해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글이라면 분명 예외는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과 감성은 늘 변해갈 수밖에 없다. 새벽 감성으로 적은 글과 아침에 이성이 눈을 뜬 이후 적은 글이 같을 순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치에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듯 글에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지금 글을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다음날 다시 한번 읽어보면 어색한 느낌, 문맥상 불필요하거나 어색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글을 간결하게 다듬고, 핵심에 집중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작가는 글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담백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김장 김치의 양념들이 김치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과정처럼 글에도 맛이 배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가급적 글을 쓰고 난 다음 숙성의 시간을 갖고 첫 번째 독자인 작가 스스로 그 글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접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장을 하는 것이 불편하고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도 김장을 하던 중간에 간을 보라며 한 줄기 뜯어 주시던 김치가 맛있었고, 양념에 버무린 새김치만으로도 따뜻한 밥 한 그릇 뚝딱 먹던 시절이 있었다. 쌀쌀한 바람이 불 때면 그 시절 돼지고기 수육과 함께 어울려 다가왔던 김장 김치 생각이 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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