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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Dec 23. 2019

나의 라떼 도전기

"라떼는 말이야~"

”주문하시겠어요?"
"카페라떼 한잔이요"
짧은 대화가 오고 간 후 어느새 주문이 완료되었다.

원래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일이었는데 요새 이런저런 일들로 맘도 어지럽고 인생도 노잼인 상황에서 갑자기 어느 작가님의 글을 통해서 접한 라떼의 고소함을 느껴보고 싶었다.

주변에 많은 여러 커피숍 중에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는 지인의 추천으로 녹색 간판의 모 카페를 골라 들어갔다. 호기롭게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를 하루 이틀 다녀본 게 아닌데 직접 마실 커피를 주문한 경우는 기억하건대 분명 올해에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 전까지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문하기 전 인터넷 녹색창에 "라떼 주문하는 법"이라고 검색해 본 건 비밀이다)

어느새 두 손에 들려 나온 커피를 보고 있자니 적잖이 흥분이 되었다. 커피를 마시진 않았지만 커피 향을 좋아하고 있었으니 풍겨오는 커피 향과 함께 컵 위에 둥둥 떠 있는 하얀 거품까지. (사실 뭔가 라떼아트를 기대했는데 이런 걸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나, 현실과 이상의 갭은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 남들 다 커피 마시는 사이에서 항상 다른 음료를 시켜오고 있었던 과거의 자신은 까마득히 뒤로 한채 "나도 커피 먹고 있어요~" 라며 으쓱 대고 있는 것 같았다.

첫 한 모금, 과일 한 조각을 베어 물듯 그렇게 유리잔에 담긴 라떼를 한 모금을 베어 마셨다.

한 모금, 두 모금 유리잔의 커피가 줄어들수록 이제 밤에 잠은 어떻게 자야 하나?라는 걱정이 늘어남과 동시에 새로 접한 맛에 대해 정의하기 위해 온 미각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고 그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카페인 덕분이었을까 심장 박동 또한 빨라지고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부모님 곁에서 한, 두 스푼 얻어먹던 그때의 프림 커피 맛이 떠올랐다.

남들은 누구나 당연하게 혹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들이 있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키는 일, 누군가와 만나고 또 헤어지는 일, 오래된 물건을 버리거나 새로운 것을 사는 일 등

커피를 마시는 일이 나에겐 그랬다. 카페에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주문하고 들고나가며 보통 사람들에겐 너무도 대수롭지 않았던 그 어떤 일들이 나에게 있어서는 도전이었고 한 해가 가기 전 일 년 중 처음 일어나는 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평소 해보지 않았던 경험들을 시도하면서 그 안에서 뜻 모를 즐거움도 찾을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어보며 장소를 찾고 있었고,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는 법, 메뉴 등 사전 정보를 찾아보았다. 마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그런 기대와 흥분을 라떼 한잔을 주문하면서, 그리고 그것을 마시면서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삶이 무료하고 재미없다고 하여도 새로운 일들은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
이제 막 한잔을 마시고 난 후에 막연히 쓸 것이라고 예상했던 라떼 속에서 발견한 고소함은 분명 내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방황하고 있던 시간 속에서 나를 이끌어준 사람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느낀 따뜻함만은 그 자체로 온전한 따뜻함이었다.

그렇게 나의 라떼 도전은 쓸 거라 생각했지만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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