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은 사양할게요
"참 잘했어요"
어린 시절 일기나 숙제를 하면 찍어주던 도장 속에 담긴 문구였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써서 담임 선생님께 검사받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고, 그런 덕분에 매일 같이 일기를 쓰고 아침이면 반장이나 어딘가에 그것을 제출하여 선생님께 검사를 받고는 했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있었을 누군가 내 일기를 읽었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싸움까지.
일기 :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 (출처 : 국립 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 중)
하지만 문제는 일기를 제출하고 검사를 받는 그 자체에 있었다.
말 그대로 일기는 개인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것에 담긴 생각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었는데 이걸 검사를 받자고 누군가에게 제출하고 읽히고 있었으니, 어린 시절이긴 했지만 그 시절이라고 자기 생각이 없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나 생각들 또한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련의 과정은 다 건너뛰고 일기를 쓰고 검사를 받고 하고 있는 과정 속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걸 정말 내 생각대로 혹은 일어난 사실을 솔직하게 적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읽을지도 모르니 남들에게 읽혀도 전혀 무관하고 나 자신의 평판 또한 지장이 없을 (어린 시절이라면 선생님께 전혀 혼나지 않을 만한) 그런 글을 써야 하느냐는 갈림길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일기 검사를 받는 교육과정이 지난 이후에도 어딘가에 일기를 쓰게 될 때면 누군가에게 제출하지 않더라도 이런 생각은 늘 가슴 깊은 곳에 남아있게 되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생각들을, 혹은 지금 이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터 놓고 쓰고 있을 공간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튀고 싶지 않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성격 탓을 하기엔 이런 생각들은 너무 병적으로 나를 에워싸고 있으니, 그래서인 탓인가 매번 일기를 열심히 써보자는 다짐과 계획은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 되기 일수였고, 일기라는 것을 꾸준히 적기도 힘들었고 특별히 무언가 남기고 싶었던 날에도 그 생각들을 꾸역꾸역 마음속 깊이 눌러 담아 놓았던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이제 그 누구도 나 자신의 일기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도장을 찍어줄 사람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읽어주지 않더라도 혹은 누군가 읽더라도 내 본체는 적당히 숨긴 채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약아빠지게 되어버린 걸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처럼 누군가 읽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생기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아무렴 어떠랴, 오늘도 이렇게 일기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