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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Nov 17. 2021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화낼 일이 줄어든다.

INTJ
내 MBTI 유형이다.
대학 시절 검사에서는 INFJ였는데, 몇 년간의 직장 생활을 거치며 성향이 약간 바뀐 뒤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MBTI유형 중에 가장 독립심이 강하고 냉철한 유형이라는 INTJ는 I (내향적), N (직관적),  T (사고),  J (판단)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 나를 가장 잘 반영한 건 I(내향성)이다.

나는 극 내향인이다.


에너지는 주로 나를 향하고, 오롯이 혼자일 때 편안함을 느낀다.




사회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E (외향)의 가면을 쓸 수 있게 되었으나, 한껏 외향의 가면을 쓰고 지내다 집에 돌아오면 몸이 축 늘어질 만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늘, 혼자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나름 밸런스를 잘 조절해가며 지내왔다.


그런데!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그 혼자만의 충전의 시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유난히 청각이 발달하고 또 예민한 편이기도 하다. 소리에 워낙 민감하다 보니,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에도 음악을 들으며 하지 못한다. 온 신경이 귀로 집중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간 역시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역시나 불행하게도)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늘, 웃음소리든 울음소리든 말소리든, 무슨 소리든 끊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는 귀도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는 대체로 친절하게 대하려 하지만, 저녁 8시쯤이 되면 아이들의 작은 소동에도 쉽게 인내심을 잃고 아이들을 다그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으며 '혼자만의 충전시간'을 갖지 못했고, 계속해서 소음에 노출된 귀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소리가 나면 '마음이 싸늘하게 식고 모든 걸 끝장내고 싶을 만큼 화가 나는 것'이다.


처음엔, 한껏 곤두선 신경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들을 혼내고 벌을 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은 억울해했다.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혼이 났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 말이 맞았다. 낮시간까지는 허용되던 범위의 소동이었는데, 엄마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혼이 난 것이다.


"그래, 너희 말이 맞아.

혼날 일은 아니었는데, 그건 엄마가 사과할게.

그런데, 엄마가 귀가 좀 예민한 편이라, 저녁때가 되면 너희 소란을 듣기가 너무 힘들어.

귀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

엄마가 힘들다고 말하면, 너희도 좀 조용히 놀아주면 좋겠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탁을 했다. 의외로 아이들은 엄마의 예민함과 힘듦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이제는,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본다.


내가 지금  힘든 거지?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경이 곤두선 순간에 나에게 필요한 건 주로 혼자 웅크릴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오케이.

원하는 것을 알아냈으니, 망설일 것 없이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방 문을 닫고 침대에 눕는다.


조용하고 깜깜한 방 안에서 죽은 듯 충전을 마친 뒤 거실로 나와보면, 아이들의 소동은 어느덧 마무리가 되어 있고, 나 역시 아까와는 다른 호흡임을 느낀다.




마음의 갈등과 화의 근원을 찾아들어가다 보면, 의외로 '나의 컨디션'이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내 마음이 여유를 잃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화가 올라오거나 여유가 사라지는 순간을 종종 알아채곤 한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혹은 남편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거나 화를 내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좋고, 나 또한 나 자신에게 최선의 해결책을 선물할 수 있어 기쁘다.



기운 빠지고 만사가 심드렁해지고 누군가가 몹시 미워지는 날이 있다. 마음이 싸늘하게 식고, 모든 걸 끝장내고 싶을 만큼 화가 나는 날이.

이런 날은 내 삶에 두 가지가 부족하다는 신호다.
느림과 텅 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동은 이 두 에너지가 방전됐으류때 생긴다.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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