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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Dec 24. 2021

정글짐 아래 모래처럼

어른의 역할은 무엇일까

"떨어져서 다치면 어떡해?"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그렇지. 모래가 있었다. 하준이는 그런 모래를 믿고, 떨어져도 다칠 걱정 없이 아찔한 정글짐을 올랐던 것이다.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린이라는 세계 p.63



얼마 전, 아이들에게 킥보드를 사주었다.

킥보드는 요즘 어린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탈것이지만, 우리 집 어린이들에게는 그저 선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첫째 아이는 어렸을 때 잠시 킥보드를 타기도 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작아져버린 킥보드를 처분한 뒤 업그레이드 시켜주지 않았다.(예전에 살던 아파트에는 킥보드를 탈 수 있는 넓고 평평한 공간이 있었다.) 둘째 아이 역시 몇 년간 킥보드가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자전거만 들이밀었다.


이유는 단 하나, "킥보드는 너무 위험해!"라는 내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리 졸라도 "위험해서 안돼!"라는 반응만 보이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은 결국 킥보드를 포기한 듯 보였다.


그렇지만 또래 친구들이 신나게 발을 구르며 킥보드를  타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다시금 시무룩해졌고 내 마음도 덩달아 불편했다.




<안전>에 대한 나의 기준은 꽤 높은 편이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길만한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으려 한다. 킥보드는 그 한 예일뿐이고, 내리막길에서 달리기, 놀이터 미끄럼틀 위로 오르내리기, 혼자서 찻길 건너기, 보호자 없이 놀이터 나가 놀기 등 친구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들이 우리 집 어린이들에게는 금지되곤 한다.


아이들은 넘어지고 다치기도 하며 배우는 건데, 엄마의 안전 민감성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내가 너무 과잉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늘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부분이 없는데, 언제까지 그 행동 자체를 피하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사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며칠을 끙끙대며 고민하다 아이들에게 킥보드 얘기를 꺼냈다.

"얘들아, 킥보드. 아직도 갖고 싶어?"

"......(어리둥절)...... 네! 네! 당연하죠!"

"그래, 그럼 지금 사러 가자!"

"정말요?!"


이게 뭔 소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아이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온 몸으로 대답을 했다.


"얘들아, 대신 주의사항은 꼭 지켜줘! 헬멧 꼭 써야 하고, 내리막길이나 찻길 건널 때는 꼭 내려서 걸어야 해!"

"네 엄마! 걱정 마세요! 저희도 그 정도는 안다고요!"


집 근처 킥보드 가게에 가서 진열된 킥보드를 하나하나 타보며, 가장 튼튼하고 안전해 보이는 킥보드를 하나씩 골라 들었다. 아이들은 킥보드를 고르면서도 '엄마가 정말 사주는 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 표정을 살폈다. 녀석들, 미안하게시리.....


"엄마, 근데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그동안은 절대 안 된다더니 왜 사주시는 거예요? 왜 마음을 바꾸셨어요?

"너희가 너무 갖고 싶어 해서 사실은 엄마도 그동안 많이 고민하고 있었어. 지금도 킥보드가 위험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엄마가 걱정된다고 해서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싶었지."

"그랬구나! 정말 고마워요 엄마!"


아이는 엄마가 자신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조금은 양보해주었다는 것에 감동한 듯 보였다.  




드디어 마음에 쏙 드는 킥보드를 손에 넣은 아이들은 한동안 매일매일 신나게 킥보드를 탔다.

당연히 아이들은 종종 넘어진다.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장비는 갖추었으니 넘어지더라도 크게 다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엄마! 킥보드 손잡이를 이렇게 세게 당기니까 좀 위험하네요! 앞으로는 이렇게 안 해야겠어요!"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넘어진 이유를 분석하고 다음엔 조심해야겠다며 자신만의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


날씨 좋은 주말이면 남편과 나는 자전거를, 아이들은 킥보드를 타고 집 근처 강변으로 나가 꽤 멀리까지 소풍을 다녀오기도 한다. 남편이 가장 선두에서 코스를 지휘하고, 그 뒤에 첫째 아이 둘째 아이가 일렬로 서서 이동한다. 나는 맨 뒤에서 달리며 아이들이 혹시 부딪히거나 넘어지지는 않는지 살핀다. 힘차게 발을 구르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기특하고 감동스럽다. 그동안 그리도 날아가고 싶었을 텐데 엄마가 품 안에 끼고 있어 자유롭지 못했겠구나, 너희들이 잘해나갈 거라는 믿음을 갖지 못했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앞으로도 많은 일들에 도전하고, 종종 넘어지고 또 실패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자신만의 삶을 걸어갈 게다. 나의 역할은, 도전하는 아이들을 묵묵히 바라보며, 정글짐 아래 모래처럼,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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